[사도들의 서간]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 필리피서
바오로는 두 번째 전교 여행 중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꿈을 꿉니다(사도 16,9). 그래서 바오로는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로 건너간 뒤 육로를 통해 필리피로 갑니다.
필리피와 바오로
필리피에 도착한 바오로는 성 외곽에 있던 강가에서 몇 사람을 입교시켰는데, 그 가운데에는 리디아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장수였는데, 바오로의 말을 듣고, 그를 자기 집에 모십니다(사도 16,11-40). 리디아의 집은 필리피 교회의 출발점이 되는데, 이 교회는 바오로가 유럽 땅에 세운 첫 번째 교회입니다.
바오로는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뒤 필리피를 떠납니다. 그러나 이후 여행 때마다 필리피 교회를 방문하여 신자들을 만나곤 했습니다(1코린 16,5; 2코린 2,13; 7,5; 사도 20,1-6). 사실, 바오로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 이 교회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전도할 때 항상 직접 일을 하여 생계비와 전도비를 마련했는데, 필리피 신도들의 물질적인 도움만은 기꺼이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필리 4,15-16; 2코린 11,8-9). 필리피 교우들에 대한 바오로의 이런 사랑을 필리 1,3-11에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3년가량 에페소에 머물고 있을 때, 에페소에서 바오로 때문에 큰 폭동이 일어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사도 19,23). 아마 살아서 나가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필리 1,12-26).
이 소식이 필리피에 전해지자, 필리피 교우들은 에파프로디토스를 대표로 파견하여 바오로를 도우려 했습니다. 그는 바오로에게 와서 필리피 교우들의 상황을 알려주었는데, 바오로는 그가 돌아가는 차에 티모테오도 함께 보내면서 자신이 필리피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또 얼마나 필리피에 가고 싶어 하는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에파프로디토스 등을 통해 전해 듣게 된 필리피 교회 내부의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해 조언합니다. 필리피서를 보면 필리피 교회 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의 문제들
율법과 할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필리피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3,1-11). 그들은 바오로가 감옥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일 바오로를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곧, 바오로가 괜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과 충돌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감옥에 갇히다 보니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오로를 비판하며 공동체 안에 분열도 조장한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편지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일이 오히려 복음전파에 도움이 되었음을 알라고 말합니다(1,12). 그러면서 자신을 비난한 이들을 두고 “이기심이라는 불순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나의 감옥생활에 괴로움을 더할 궁리를 하는” 이들(1,15-18)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편지 후반부에 가서는 그들을 ‘개’, ‘나쁜 일꾼들’이라고까지 부르며, 그들의 주장을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3,1-4).
사실, 필리피 교회는 박해자들로 인해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서로 다른 주장으로 교회가 분열된다면, 교회는 적대자들과의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한뜻으로 굳건히 서서 한마음으로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위해 함께 싸우라고 권고합니다(1,27-30).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권고하며,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권고합니다(2,1-5). 서로가 겸손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고, 그런 일치를 이룰 때 비로소 교회는 적대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바오로는 일치와 겸손을 권고하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낮춤(Kenosis)을 참된 겸손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그리스도 찬가 : 2,6-11).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모범을 본받아 우리 역시도 참된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 자신도 지금은 감옥에서 고난을 받으며, 동료들에게까지 비난받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과 할례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유다인이며 바리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오히려 박해하던 이였습니다(3,4-6). 그러나 바오로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이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쓰레기로 여기고 오직 그분의 죽음과 고난에 동참하고자 했기에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음을 역설합니다(3,7-11).
바오로가 보기에 하느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더욱 크게 드러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을 낮추는 예수님을 높이 올려주시어 그분께 주님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셨고,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2,10-11).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감옥에 갇힌 자신을 통하여서도 큰일을 하셨는데, 바로 모든 형제가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1,13-14).
물론 아직 바오로는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비천한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예수님처럼 철저히 자신을 낮추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결국 하늘 시민으로 영광스러워지리라고 고대합니다(3,20-21).
그리고 이를 위해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리라 다짐합니다(3,12). 바오로는 필리피인들에게 이런 자신의 모범을 따르기를 권고합니다(3,17-21).
나가면서
오늘날 교회에도 서로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기 때문에 분열이 생겨납니다. 이런 우리에게 바오로는 남이 나보다 낫다고 여기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일치하라고 권고합니다.
사실, 바오로는 자신의 반대자들을 향해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1,18)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분열되면, 결국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오늘도 교만한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제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입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겸손 안에 있을 때, 교회는 믿음 안에 하나가 되어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 그분의 정의를 드러낼 것입니다.
* 염철호 사도 요한 - 부산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년)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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