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46)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주오.’ 하였네”(판관 9,14) 판관 기드온에게 아들이 일흔 명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아비멜렉이라는 자가 임금이 되려고 형제를 모두 살해했고, 막내아들 요탐만이 목숨을 건져 그리짐 산꼭대기에 가서 이런 우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나무들이 임금을 세우려고 올리브나무에게 가서 임금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자 올리브나무가 대답했다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린단 말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부탁하니 무화과나무가 대답했다네.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린단 말인가?’ 그래서 포도나무에게 가서 부탁하니 포도나무가 대답했다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주는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린단 말인가?’ 그래서 모든 나무가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가서 부탁하니 가시나무가 대답했다네. ‘너희가 나를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 몸을 피하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버리리라.’”(판관 9,8-15 참조).』 영적으로 보면, 요탐 우화의 핵심은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살면 된다는 것’이다. 올리브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듯이, 무화과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듯이, 포도나무가 포도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살면 된다.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신의 본모습을 살아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모습을 살면 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꽃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길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은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처럼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권좌에 오르려는 사람은 가시나무 같은 사람이다. 가시나무 같은 사람은 권좌에 올라 자신의 부당함과 열등감을 대리만족하려 한다. “요탐의 우화를 통해 드러난 것을 되새겨 보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본모습을 사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다만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나 자신의 본질과 소명을 살면 된다”(이성우, ‘당신은 누구요’중에서). 묵상주제 우리가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다면 ‘나답게 사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더 훌륭한 어떤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할 필요가 없다. 나를 당신의 모습대로 지어내신 하느님은 나보다 더 훌륭하고 완벽한 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원하신다. 나의 결점과 단점을 원망하기보다는 바로 그런 결점과 단점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느님이 일하심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의 결점과 단점을 없애려고 싸우는 한, 나는 늘 좌절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다.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