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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사마리아 여인 - 영혼의 빈 항아리 생명수로 가득 채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3,490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사마리아 여인

영혼의 빈 항아리 생명수로 가득 채워


네 복음서가 소개하는 대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대화는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누셨던 대화(요한 4,1-30.39-42)일 것이다. 이 대화가 깊은 주목을 받는 근본 이유는 대화 상대자의 인격 자체 때문이며, 아울러 대화 중에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메시아로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이 대화의 장면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는 여행 도중에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고을에 이르셨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여기며 미워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가 아니라 그리짐 산 성전(느헤미야 시대에 세워진 성전)에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다인들 사이의 마찰이나 불화가 더욱 잦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혈투까지 벌어질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정오 무렵에 야곱의 우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리고는 먹을 것을 사오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그분은 오랫동안 홀로 계실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그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화 상대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평범한 행동이 아니라, 아주 이례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이를 여인의 반응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9절)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금기를 깨뜨리고 계신다. 첫째, 그분은 당시 멸시받던 백성에 속하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신다. 둘째, 유다 남자들, 특히 랍비에게는 여성들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일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여인과 대화를 나누신다. 이처럼 평범한 행동을 넘어서는 당신의 태도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해명하시거나 이렇다 할 이유를 밝히시지 않는다. 오히려 물을 청하는 일은 하나의 ‘피상적인’ 계기일 뿐이라는 투로 말씀하신다. 이를 계기로 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시고, 이제 당신께서 주실 수 있는 생명수에 관해 풍부하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생명수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였다. 그녀의 생각은 거의 우리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일들에 머물러 있었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걱정에 맴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두레박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 생명수를 떠다 줄 수 있겠느냐는 그녀의 반문은 논리적으로 수긍이 가지만, 그녀가 지금 아주 진부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아주 진지하게 지금 전혀 다른 내용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 이성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정작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곧 예수님께서는 베풀어주시는 분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14절) 그녀는 권능에 가득 찬 예수님의 말씀들을 듣고 자신의 깊은 내면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분께 그 물을 청한다.


참된 삶을 갈망하는 여인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동기도 없이 그녀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요구하신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정직한지를 시험하시는 듯이 보인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17절)는 그녀의 대답은 숨김없는 정직한 말이지만, 아직 그녀에 대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

그녀의 온전한 모습은 예수님에 의해 이렇게 밝혀진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18절)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암시하고 계신다. 곧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 곧 그 여인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까지 이미 남김없이 알고 계신다는 것을 밝히심으로써 당신이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시는”(요한 2,25)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 보이신다. 이러한 당신의 고유한 신적(神的) 직감력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충만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많은 남자들을 사귀었고 또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체험했지만, 아직 그 충만한 행복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아채신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약점을 조금도 드러내시지 않으면서, 참된 삶과 행복을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는 그녀의 존재 전체를 받아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한바탕 그녀에게 윤리적인 내용을 훈계하지 않으신다.

이에 사마리아 여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시군요.”(19절) 하고 응답한다. 이 응답에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종교적인 내용에 마음을 기꺼이 연다. 그녀의 종교적 갈망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참된 장소에 대한 물음으로 표현된다. 예수님께서는 ‘기술적인’ 상세한 답변을 생략하시고 즉시 본론으로 넘어가신다. 곧 참된 예배는 장소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적인 태도가 참된 예배의 결정적인 요소이다(21-24절 참조).


신앙을 제대로 깨닫고 선포자가 되는 여인

이에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아가 분명 오실 것이며, 그분은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임을 분명하게 믿고 있다고 고백한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26절) 하고 말씀하시자,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상징인 물동이 - 여인의 삶은 비어 있는 물동이처럼 공허했다 - 를 우물가에 버려두고 서둘러 고을로 돌아간다. 그녀의 마음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메시아의 체험과 그 감동을 그녀 홀로 간직하기에는 너무 벅찼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고을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한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29절) 그리고 고을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한다.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선교사가 된다. 이를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39절)

여기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사실은, 고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과는 다른 어조로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42절) 고을 사람들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먼저 이 여인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고을 사람들이 탐탁하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발설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은 성경이 제자들에 관해서 언급하는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곧 제자들은 우물가에 돌아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그 여인에게 무엇을 청하셨는지 또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물어보지 않았다(27절 참조).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선입견에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의 신원을 메시아로 계시하셨다. 그 많은 고을 사람 중에서 첫 번째로 당신의 신원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얼핏 보기에 결코 신뢰할 수 없이 보이는 그 여자를 신뢰하신다. 그리스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이례적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여인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심으로써, 그 여인을 고을 사람들의 사도로 파견하신다.”

[쌍백합, 제17호, 2007년 가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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