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여인]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여인 리디아
수완 좋은 여성 사업가로 유럽 첫 공동체 건설 견인
사도행전은, 사도 바오로가 동료 실라스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던 두 번째 선교여행 중에 어느 날 밤 꿈에서 환시를 보고 행선지를 유럽으로 옮기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도한다. 마케도니아는 바오로가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내딛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필리피로 간다(사도 16,6-12 참조).
필리피는 당시 그리스의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거기에는 몇몇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에게해의 풍부한 자원들로 말미암아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물물교환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다인의 그룹 혹은 공동체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거기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그곳에 관련된 자신의 선교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13절).
그러니까 바오로가 그런 기도처에서 자신의 복음 선포를 경청할 만한 청중들을 찾기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 강가에서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13절). 바오로가 그렇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자들이 여러모로 하느님을 두려워하였고,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여자들은 유다인 신앙에 아주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유다인의 율법 전체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들로 불리어졌을 것이며, 유다교로 온전하게 귀의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자립한 사업가
그렇지만 이 여자들의 그룹은 되도록 규칙적으로 함께 모여 공동으로 기도를 드렸다. 거기에는 리디아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색 염색으로 유명했던 도시 티아티라 출신으로서 자색 옷감 판매 사업가로 소개된다.
리디아는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디아라는 그녀의 이름은 출신지명 ‘리디린’(Lydierin)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사는 여자였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자수성가한 여성들이 적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리디아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리디아가 왜 생활터전을 소아시아의 티아티라에서 필리피로 옮겼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녀의 이주는 아마 사업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그녀는 상당히 지혜롭고 수완이 좋은 사업가였다. 그녀는 자색 옷감 판매를 통하여 제법 많은 재화를 모았고, 그래서 큰 집을 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녀가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노력과 재화의 축적으로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정을 받았었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색 옷 장사는 일반적으로 염색 사업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그런 염색 사업은 가죽 사업처럼 지독하게 역한 냄새를 풍기어 주변에 있는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면에서 천대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믿음과 활동력의 소유자
리디아는 특히 바오로의 복음 선포에 귀 기울였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14절). 그러니까 성경은 그녀의 회심이 자신의 노력이나 사도의 공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필리피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던 리디아는 이제 본격적으로 힘찬 활동을 펴나가기 시작한다. 곧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녀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15절). 그녀의 옷 가게 점원들, 그녀의 집안을 돌보던 종들이 그녀와 함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리디아는 이제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온전히 속한다는 표시로서 세례를 받았다. 틀림없이 그녀는 특별한 직감력과 함께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로 여성의 가치를 높이 인식하고 또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같은 세례를 동등한 방식으로 받는다는 것에서도 그녀는 여성의 존엄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유다교 안에서 여성은 하느님의 사제적 백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합당한 권한이 없다. 여성은 오직 남성의 도구로만 여겨졌고, 오직 할례를 받은 남자들만 사제적 백성으로 인정을 받았다던 것이다.
손님을 후대하는 주인
이렇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리디아는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제 바오로와 그의 동료인 실라스를 집안에 초대하였다. 그녀는 주도권을 분명하게 쥐고 있었다. 이것을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리디아는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15절).
여기에서 그녀는 아주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걱정하거나 외적인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그녀는 사도들의 초대를 강력하게 권고했다. 그 결과 그녀의 집은 가정 교회가 되고, 나아가, 필리피에서 선교의 거점이 된다. 곧 그녀의 집은 넓은 유럽 지역 전체 가운데 첫 번째 공동체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집을 선교의 거점지로 내놓고, 그 집에 항상 새로운 방랑 설교자들이 드나들게 하는 데에는, 손님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호의뿐만 아니라 대담한 용기도 필요했다. 왜냐하면 관청을 상대로 하여 나그네들에 대한 책임을 일정 부분 감당해야 하고, 나그네들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디아는 자신의 믿음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모두 감수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믿었던 것이 아니다.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했다. 이렇게 그녀의 믿음은 공동체를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싹이 트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겨자씨와 같았다.
사도행전은 얼마 후에 리디아의 이름을 한 번 더 거명한다. 곧 바오로와 실라스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설교를 한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에 가장 먼저 찾아간 집이 리디아의 집이었다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이렇게 그들은 감옥에서 나와, 리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격려해 주고 떠났다”(사도 16,40). 리디아의 집은 그만큼 선교의 거점지로 많은 신자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는 말이다.
바오로는 나중에 필리피의 공동체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는다. 그는 필리피 형제자매들을 “나의 기쁨이요 화관”(필립 4,1)으로 부를 정도였다. 리디아가 바오로에게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주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리디아가 인격적인 면에서나 적극적인 신앙실천의 면에서 하느님 나라의 중요한 협력자였음은 틀림이 없다. 오늘날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협력자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신다.
[쌍백합, 제24호, 2009년 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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