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 아브라함과 사라와 천사.
아가서에는 연인을 ‘누이’로 표현한 구절이 있다(“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4,9).
창세기에도 의구심을 일으키는 일화 중에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로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창세 20,2).
아브라함은 파라오 앞에서도 같은 거짓말(?)을 했고, 대를 이어 이사악에게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다(“그곳 사내들이 자기 아내에 대하여 묻자, 이사악은 “내 누이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레베카가 예뻐서 이곳 사내들이 레베카 때문에 나를 죽일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였기에......” 창세 26,7).
이쯤 되면 믿음의 조상에게 숨어 있던 인간적 소심함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데, 학자들은 사라가 실제로 아브라함의 배다른 누이였음을 지적하기도 했다(“더구나 그 여자는 정말 나의 누이입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달라서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 창세 20,12). 그러나 레베카는 친척이긴 했지만 여동생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석에 어려움을 겪다가, 이라크 누지(Nuzi)라는 유적지에 의해 수수께끼가 풀렸다. 누지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로서, 출토된 고대 비문들이 아브라함 시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출신이었지만 칼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누지는 지리적으로 시대적으로 아브라함과 매우 가까운 지역이다.
누지 유적 중에서 아쿠레니라는 이에게 관련된 비문을 보면, 여동생 벨타카두미를 후라지라는 사람에게 ‘누이’로 팔았다고 한다. 함께 출토된 결혼 계약서에는 여동생 벨타카두미를 후라지에게 ‘아내’로 준다는 내용이 있다. 즉, 아쿠레니는 자기 여동생을 후라지라는 남자에게 누이 겸 아내로 팔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라와 레베카도 이중적인 위치를 누린 것이 아닐까? 결혼하여 ‘아내’가 되었지만, 결혼이란 남편의 ‘누이’가 되는 위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은 아내를 소개할 때 ‘누이’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했던 모양이다.
흥미롭게도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연인 사이를 오빠와 누이로 비유한 관습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혈연이 아님에도 나이 어린 여자는 애인에게 ‘오빠’라 하고, “오빠가 아빠 된다”라는 표현도 생겨난 것처럼. 게다가 요즘에는 연상연하 커플도 많아서, 나이 어린 남자가 ‘누나’를 사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오빠’라는 호칭을 들으면 친남매인지 연인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성경에 비슷한 관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정말 돌고 도는 역사 속에 급속한 세대 차이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2013년 6월 9일 연중 제10주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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