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11) 역사의 예수님에 관한 연구 ③ 가톨릭 신학계의 나자렛 예수 그리기
역사의 예수 관심은 신앙의 역사적 근거 정립 위함
- 예수의 잉태와 부활 사건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8)’는 말씀처럼 역사와 신앙이 만나는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위고 반데르 고즈(Hugo van der Goes, 1440-1482)의 ‘목동들의 경배’, 목판에 유채, 97 x 245cm, 베를린 회화미술관, 독일.
대부분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그 연속성은 나자렛 예수의 인격과 활동의 종말론적인 성격에 기인한다.
우리는 존 필 마이어와 같이 역사비평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으면서 루돌프 슈나켄부르크나 클라우스 베르거 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처럼 신앙과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자렛 예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겠다.
1. 동정녀 잉태
신약성경 중에서 오직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만이 예수의 동정녀 잉태를 보도한다. 많은 예수 연구서들이 예수의 탄생과 유년 이야기를 생략하는 것은 이 전승이 매우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마태오와 루카 사이에도 불일치하는 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수의 동정녀 잉태에 대하여 「예수」의 저자 클리우스 베르거는 역사적 판단을 뛰어넘는 신앙의 직관 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지전능하고 알 수 없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팔레스티나의 이 처녀에게 그렇게까지 가까이 오셨기에 그 결과로 한 인간의 생생한 육체적인 생명이 시작되었다.”
그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도 동일한 해석을 적용한다. “하느님은 무덤에 누워있는 죽은 예수에게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오셨기에 그 결과로 기적과 같은, 변화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다. 예수의 기원과 부활은 같은 하나의 나무에 새겨진 것이다(81쪽).”
동정녀 잉태가 역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2. 예수와 성령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당혹성의 기준이라는 역사비평의 관점에서 확실하다. 복음서들은 성령 강림이 예수의 세례 때에 이루어졌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성령은 예수의 인격과 활동에 종말론적인 특성을 부여했고 루카는 “예수께서 성령 안에서 흥겨워 하시며 말씀하셨다”고 전한다(루카 10,21).
3.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가까움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선포의 중심이다.
유다교에서 하느님 나라가 역사의 종말에 오는 것이었다면,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미래(마르14,25)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현재(루카11,20 17,21)와 그 나라의 신비스런 가까움(마르1,15)을 선포했다. 예수는 미래의 하느님 나라가 가난한 이들과(루카 6,20) 어린이들의 것(마르 10,14)이라고 선언한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해석하고 그 나라를 부여하는 전권 주장에서 예수의 종말론적인 자기 이해가 드러난다.
예수의 사죄 선언(마르 2,5)과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사 친교(마르 2,16), 그리고 치유와 구마 행위는 이미 하느님 나라가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표징이다. 이처럼 미래의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인격과 행위를 통하여 이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하느님의 다스림으로 나타난다.
4. 하느님 나라와 기적
예수가 기적을 수행하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세기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유다 고사기 18,65)이었다고 묘사하고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43a)도 예수가 마술을 부려 백성들을 현혹시켰다고 말한다.
예수가 어떤 종류의 기적을 수행하였는가를 역사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존 필 마이어는 다수적 증언(마르 5,35-43 루카 7,11-15 요한 11,1-16 어록Q 7,23)에 입각하여 죽은 이를 살리는 이야기들의 배후에 역사적 진실이 있다고 평가한다.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야기는 2열왕 4,42-44 와 최후의 만찬(마르 14,22-23)의 축복의 기도를 결합시킨 초대교회의 창작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마이어는 물고기라는 특이한 소재 때문에 빵의 기적이야기는 예수가 갈릴레아의 호숫가에서 군중과 함께 물고기를 곁들여 먹은 특별한 식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예수는 자신의 기적에 종말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 세상에 온다고 선언했다.
5. 하느님 나라와 대조사회
예수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죄인, 세리, 병자, 빈자들과 어울리시며, 여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그리고 이들이 하느님을 ‘Abba’라 부르며 기도하는 자녀가 되게 하고(루카 11,2) 그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되게 하셨다(루카 11,15-24).
그 나라에 속하고자 하는 이들은 세상의 지배자들과 달리 서로를 섬기고 가진 것을 팔아 함께 나누는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마르10,42-45). 나아가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기적 수행 능력(루카 10,9)뿐만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질 심판의 자리까지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마태 19,28) 그룹 메시아니즘(게르트 타이센)을 표방하였다.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예수가 설계한 제자들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대조사회라고 일컬었다.
6. 하느님 나라와 인자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말하기 보다는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였다. 사람의 아들은 다니 7,13에 등장하는 메시아적인 인물이면서, 샤를르 페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자신을 에둘러 표현하는 예수의 고유한 어법이다.
사람의 아들은 지상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고(마르 2,10) 세리와 죄인들과 친교의 식사를 나누며(루카 7,34) 자신의 목숨을 많은 이들을 위한 몸값으로 지불한다(마르 10,45).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 심판자로 온다(루카 12,8 17,24).
하지만 예수는 현재의 ‘나’와 심판 때의 ‘사람의 아들’을 구별하는 방식을 통하여(루카 12,8)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종말론적인 운명을 지닌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지닌 이러한 운명에 제자들을 초대하였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현재에 헌신하고 그 나라의 최종 도래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사람의 아들의 종말론적인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7. 하느님 나라와 부활
신약성서의 일치된 증언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부활의 역사성은 오로지 사도들과 500명이 넘는 발현 체험자들의 증언에 기초한다(1코린 15,3이하). 그리고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빈 무덤이 예수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가 되는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서 부활의 사기극을 벌였다는 시신 도난설 (마태 27,64)을 주장하였고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다른 무덤으로 옮겨(요한 20,15) 빈 무덤이 되었다는 무덤 이장설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부활 사건은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행복하다(요한20,28)”는 말씀처럼 ‘동정녀 잉태’와 더불어 다시금 역사와 신앙이 만나는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사건으로 구원의 역사에 각인되어 있다.
샤를르 페로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적하였듯이, 초대 교회에서부터 성찬례는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재림을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을 회상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는 부활 신앙의 탁월한 자리가 되었다.
8. 맺는 말
왜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가지는가? 그것은 교회의 교의와 전례 중에 고백되는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적 근거를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나자렛 예수의 진실에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 신앙을 살아가는 힘과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신앙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나자렛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조명함으로써 종말론적인 긴장과 약동성 안에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신앙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얻어진 소명 의식에 따라 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 의료 봉사를 하는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학원 교학부장 및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신학과사상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9일,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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