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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의 맥6: 우리는 레위기에 대해 묻고 레위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01 조회수6,322 추천수1
[신앙의 해 - 구약성경의 맥] 제6주제 : 우리는 레위기에 대해 묻고 레위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 해석과 그 적용에서 아마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책 가운데 하나는 레위기일 것입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모두 레위기의 경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각각의 전통 안에서 그 책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구약성경의 해석에서 나오는 차이라기보다는 해석된 레위기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는가 하는 점에서 발생하는 차이입니다.


레위기에 대한 두 종교의 입장

우선, 유다교에서 레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열심한 유다교 집안이라면 부모는 아이가 글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될 때(네 살 정도)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성경을 읽게 할 것입니다. 이때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읽게 하는 성경이 레위기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는 많은 점에서 유다인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며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해 주는 내용들, 곧 유다인들이 지키는 음식에 관한 특별한 규정들과 그들의 고유한 전례 축일들, 정결례에 관한 규정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날마다 바치는 기도 역시 레위기의 제사에 관한 규정들에 그 기원을 둡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레위기의 많은 가르침들을 그들의 실제 삶에 적용하고자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레위 11,7의 규정에 따라 굽이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조개류와 새우, 게, 바닷가재 등은 레위 11,9-10이 규정하는 대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기 때문에 먹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레위기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와는 다소 다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 역시 레위기를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읽고 묵상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몇몇 구절들은 레위기를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찾아온 한 율법교사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마태 22,34-40 참조). 그때 예수님께서는 각각 신명기와 레위기의 말씀으로 으뜸가는 두 계명을 언급하셨습니다.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레위 19,18의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레위기의 이 말씀을 선택하셨는지를 깊이 이해하려면 레위기 19장이 레위기 안에서 갖는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그분의 대사제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히브리서 9장 역시 레위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입니다.

셋째, 1베드 1,15-18은 레위기(19,2)의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처럼 레위기는 신약성경의 내용들을 충만하게 알아듣기 위해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위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다교의 입장과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유다교의 입장에서는 레위기가 유다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책이라면,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레위기의 근본정신에 주목하지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미 유다인과 이방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사도행전이 증언하고 있듯이 이방인들과 구별되고자 한 유다인들만의 특별한 규범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레위기에 나오는 여러 규정들의 근본의미와 정신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을 살아가는 데 초점을 두며, 대신에 세세한 규정 하나하나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레위기가 금하는 음식인 돼지고기나 조개나 새우, 게, 가재 등을 먹으며, 그것이 레위기의 근본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레위기에 나오는 이런 세세한 규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그저 무시해 버린다면 레위기가 지닌 경전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레위기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레위기가 다루는 내용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레위기를 시작하는 첫 단어인 ‘바이크라’(‘그분께서 말씀하셨다.’는 의미)이며, 70인역에서는 이 책이 ‘레위 지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레위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레위기에 언급된 모든 내용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온 그 다음 해 첫째 달(탈출 40,17 참조)과 둘째 달(민수 1,1 참조)사이, 곧 한 달 동안 모세가 만남의 천막 앞에서 백성들에게 준 가르침입니다.

이때 만남의 천막은 아직 시나이 광야에 서있습니다. 민수 10,10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비로소 시나이 광야를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성막을 그들 가운데 세운 뒤, 그들 한가운데 계신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는길을 백성들에게 제시합니다.

레위기가 다루는 내용은 제사에 관한 규정들(1-7장), 사제 임직식(8장), 만남의 천막에서 아론이 바친 첫 제물(9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사제들을 위한 규정들(10장), 음식에 관한 규정(11장), 정결례에 관한 규정들(12-15장), 성화법(17-26장), 서원 예물과 십일조에 관한 법(27장)입니다.

이런 모든 규정들은 하느님의 현존이 백성들 가운데 지속될 수 있게 하려는 것들이며, 거룩함이 백성들의 부정으로 오염되게 될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고가 그 바탕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시며, 그 거룩함은 그 어떤 부정과도 함께할 수 없는 순수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인간 편에서는 더 높은 정도의 거룩함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 어떤 민족보다 더 높은 정도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모시고 있는 성전과 가까운 곳일수록, 하느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람일수록, 하느님의 구원사건을 기념하는 시간일수록 요구되는 그 거룩함의 정도는 높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위기는 시간과 장소, 사람, 음식, 생활양식 등에서 무엇이 거룩하고 또 거룩하지 않은지 그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선 안에 머무는 것이 그들 한가운데 자리한 성막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맞갖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제시합니다.


어떻게 레위기의 가르침을 따를까?

● 레위기는 안식일과 특별한 축제일, 안식년과 희년을 거룩한 시간으로 규정하고 이 시간을 거룩하게 보내도록 권고합니다. 우리 역시 하루 중의 어느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고 그 시간을 거룩하게 보낸다면, 매일 바치는 아침, 저녁기도와 미사 참례를 통하여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그 현존 안에서 살아가려는 습관을 들인다면, 레위기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레위기에 따르면 하느님의 현존이 자리한 성소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성전의 거룩함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고 오염된 성소에는 하느님이 계실 수 없으므로 결국 하느님께서 성전을 떠나시게 되고, 그 오염된 성전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성소는 수시로 정화되어야 하고,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는 거룩한 정화예식을 가짐으로써 심각한 오염을 방지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금기사항을 어긴 사람 역시 경우마다 정화예식을 거침으로써 오염의 확산을 방지하도록 규정합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 생태윤리학에서 주장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전쟁과 테러로 인한 무차별 인명 학살과 같은 집단적인 죄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닌 자들뿐만 아니라 방관자들과 간접적 협력자들의 공동작업을 통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지구 전체의 오염과 멸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맞는 적절한 정화예식과 의식은 무엇일까요?

● 레위기의 중심이 되는 19장은 하느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거룩한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자 안식일을 준수하며 합당한 제사를 바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자기 이웃을 마음으로라도 미워하지 않아야 하며 복수를 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며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이러한 거룩함을 반영하는 것입니까?

레위기의 모든 규정은 결국 ‘어떻게 하면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특정한 시대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가 던지는 질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해당됩니다. 어떻게 하면 거룩하신 하느님께 맞갖은 거룩함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먹고,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일까요?

레위기가 지속적으로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 김영선 루치아 - 마리아의전교자프란치스코회 수녀. 가톨릭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2년을 마치고 미국 보스톤대학(예수회)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강대학교에서 구약성서 입문을 강의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구약성경과 피정 지도’라는 제목으로 구약성경 세미나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김영선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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