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바람
- 모세의 기적.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른 땅으로 걸어 들어갔다(탈출 14,21-22). 이집트 탈출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이다. 주님께서 바람으로 바다를 갈라지게 하신 뒤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바람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주님께서 당신 뜻을 펼치는 도구라 생각했다. 탈출기에는 히브리인들을 돕기 위한 열 가지 재앙이 등장한다. 8번째는 메뚜기 소동이다. 주님께서는 바람을 이용해 메뚜기 떼를 움직이신다. 놀란 파라오가 모세에게 잘못을 고백하자 주님께서는 메뚜기들을 바람에 태워 흩어버리신다(탈출 10,13-19).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Ruah)인데 ‘숨’으로도 번역된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주님께서 루아를 통해 생명을 주셨다는 기록이다. 이렇듯 루아는 바람도 되고 숨결도 된다.
희랍어 성경은 루아를 프네우마(pneuma)로 번역했다. 원뜻은 숨과 호흡이다. 우주에 깃든 영(靈)을 뜻하기도 했다. 삼라만상에 깃든 신성한 기운을 프네우마로 본 것이다. 라틴어 성경은 스삐리뚜스(spiritus)로 번역했다. 원래는 알코올이 들어있는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로마인들은 그런 음료 속에 신적 에너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하늘의 기운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바람을 그렇게 본 것이다. 우리나라도 음력 2월 1일을 영등(靈登)이라 해서 풍신제를 올렸다. 바람 신에게 풍어와 무사고를 빌었다. 바닷가 지방에서 채집되는 영등 할머니 축제가 그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바람은 성령과 연관 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셨다. 다음은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이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말에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요한 3,7-8).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성령(바람)의 활동으로 본 것이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성령강림을 체험할 때도 바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이렇듯 초대교회 때부터 바람은 성령의 한 상징이었다.
[2013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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