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호세아와 창녀 아내 일반 신자들에게 호세아는 그리 알려진 예언자는 아니다. 일생을 바쳐 백성과 왕실을 선도한 그의 선구적 역할을 생각하면, 대중적 무관심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등에 비해 뒤로 밀리긴 했어도 연대적으로는 앞 시대를 살았고(기원전 8세기), 하느님과의 계약을 최초로 혼인 관계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신부로 비유했다(2,22 :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이 전통은 마태 9,19까지 이어져 예수님은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셨다. 호세아는 히브리어로 (호세아)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고, 예수님 이름인 예슈아와 어근이 동일하다. 주 활동 무대는 북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사투리로 기록된 호세아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이 방언이 나중에는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이어진 듯한데, 베드로가 갈릴래아 사람임을 쉽게 알아본 것도 말투 때문이었다(루카 22,59 : “…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여느 나라처럼 고대 이스라엘도 사투리로 출신 지역을 추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험난한 팔자를 살았던 호세아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창녀와 혼인해야 했는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비정상적인 혼인은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을 온몸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남편이신 하느님을 뒤로하고 우상들과 불륜 잔치를 벌인 이스라엘이 창녀 신부였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 세켈, 보리 한 호메르 등을 주고 매춘부 고메르를 사들였고, 세 아이를 두었다(1,2-9; 3,2).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갈 때마다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에(3,1), 자기 아이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달픈 운명보다 민족의 미래를 크게 보았던 호세아, 그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통해 민족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한 듯하다. 그럼에도 매춘부와 혼인하여 방탕한 아내의 배신을 지켜보는 수치와 아픔, 현재 생활에 만족하여 매트릭스에 빠져 있던 동포들에게 혹독한 훈계 신탁을 내려야 했던 부담감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상기시키며, 줄기차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면 자신이 창녀 아내를 용서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매춘부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임을 알렸다. 예언 생활 동안 그가 감내한 배신의 고통과 백성들의 거부, 그리고 고독을 묵상해본다. 이 힘겨운 소명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었던 호세아는 진정 산처럼 큰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록 나의 도량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호세아와 같은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2013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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