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69)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사무엘기 상권 16장부터 다윗이 부상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다윗의 성공은 사울과 숙명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다윗의 역사에 관한 서문은 사무엘이 그를 도유하는 이야기다(1사무 16,1-13).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공식적으로 도유되는 이야기를 훨씬 나중에야 만나게 된다(2사무 2,4; 5,3). 더욱이 사무엘이 다윗을 도유할 때 분명히 그 자리에 있던 그의 맏형 엘리압은 사무엘기 상권 17장 28절에 따르면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따라서 사무엘기 상권 16장은 이미 형성된 이야기 속에 삽입된, 상대적으로 후대의 숙고, 곧 다윗의 왕권은 예언과 하느님의 선택에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후대의 숙고가 들어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아무도 상상치 못한 보잘 것 없는 양치기의 마음을 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무엘의 마음을 움직였던 사울의 끼끗한 풍채(1사무 9,2 참조)와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시작된 유행 가운데 가장 민감한 것이 있다면 여인들의 외모일 것이다. 3천년 동안 불변의 양식으로 전승되어 온 이집트 미술에서도 여인들의 머리 모양은 끊임없이 변해왔다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우리 교회의 전례에도 외적인 유행이 있다. 예를 들면, 미트라(주교와 교황이 머리에 쓰는 관)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교회의 권위가 막강한 시대일수록 미트라의 높이가 낮아지고, 교회의 권위가 실추된 시대일수록 미트라의 높이가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동네 아낙네들이 모이면 누구누구네 집 아무개는 ‘얼굴이 달덩이 같다’는 얘기를 했다. 달처럼 희고 둥근 얼굴이 당시 여성들의 이상적인 외모였던 것이다. 오늘날 서양처녀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면 뺨을 얻어맞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얼굴이 보름달 같다.’는 것은 우리 식으로 하면 ‘호박’과 같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3세기 전만 해도 서양여자들 역시 그런 호박과 같은 얼굴을 원했다. 예를 들면,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한결같이 둥글고 복스럽게 생겼다. ‘미적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런 변화는 그 시대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온다. ‘다산(多産)’이 중요했던 원시사회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튼튼함에 있었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2만 년 전의 여신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산업정보 사회에서 이상적인 여성의 외모는 날씬한 서구적 여인의 모습이다. 갸름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는 ‘활동성’과 ‘부(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얼굴이 달덩이 같다, 맏며느리감이다’는 말이 사라진 것이다. 사무엘기 상권 9장 2절에 따르면,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처럼 잘 생긴 사람이 없을 만큼 잘생겼다. 반면 사무엘기 상권 16장 12절에 따르면, 다윗은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사무엘은 다윗을 보기 전에 이사이의 일곱 아들을 먼저 보고 외모로 판단했다. 동양에서도 사람을 판단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외모, 말 그리고 글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외모부터 보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러나 하느님의 판단기준은 다르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묵상주제 우리가 외모에 신경을 쓰고 외모를 가꾸는 만큼 내적인 마음가짐과 지향을 순수하게 가지려 노력한다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양치기 다윗의 마음을 보셨다는 사무엘기 상권 16장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2013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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