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 여행 (5)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주님(마태 9,9-13) 사람은 본성상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단점이나 지난날의 과오를 감추고 싶어 한다. 사소한 단점이라 해도 그것으로 인해 장점까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된 이들의 지난 허물을 감추지 않았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예!” 하고 응답하고 나서기만 하면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예수님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세리 마태오도 그중 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카파르나움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라라.”(9,9ㄴ) 하고 말씀하신다. 이 장면에서 마태오는 예수님이 자신이 일하는 세관 가까이에 오셨는데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세관에 앉아 세리 업무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당시 세리는 유다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하느님을 온 세상의 유일한 임금으로 섬기는 신앙에 위배되는 큰 죄였다. 유다인들은 그런 세리들을 악인이라고 비난하면서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닫아버린 마태오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까이 와있는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꾸만 하늘 나라에서 멀어져 가는 죄인들을 회개시켜 구원받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9,12-13). 그분은‘심판’으로 죄인을 단죄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엄한 처벌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품게 하여 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으로 죄를 피하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랑’으로 죄인을 용서하고 감싸주면 마침내는 돌처럼 단단해진 마음을 녹여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게 하고 스스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이끌어준다. 이는 마태오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마태오의 잘못된 과거를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시고, 그에게 먼저 다가가시어 조건 없이 당신 제자로 부르신다. 이 부르심은 죄인 마태오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께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세관에 앉아 있던 그는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고 “그분을 따랐다”(9,9). 하느님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마태오가 예수님을 만찬에 초대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그 자리에 함께한다(9,10). 이들은 마태오가 초대한 그의 친구들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 사랑을 선포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찬을 열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많은 세리와 죄인이 예수님과 한 식탁에 앉은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여 불평을 했다(9,11).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9,12ㄴ-13). 예수님의 행동은 자기네와 같은 의인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이 일상 기도문처럼 읽고 묵상하던 시편의 저자도 “진정 사람이란 숨결일 따름, 인간이란 거짓일 따름, 그들을 모두 저울판 위에 올려놓아도 숨결보다 가볍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태오와 그의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바리사이들이 이를 깨달았더라면 예수님의 행동을 언짢아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환호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는 아무 조건이 없지만, 세리 마태오의 이야기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첫째는 부르심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이다(9,9ㄴ). 둘째는 다른 이들도 하느님 사랑을 함께 나누도록 초대하는 것인데(9,10), 이는“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9,13ㄱ)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다. [2012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전주가톨릭신학원 성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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