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72)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복을 받아라. 너는 하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 갈 길을 가고, 사울도 제자리로 돌아갔다(1사무 26,25). 사무엘기 상권 18장부터 26장에는 사울의 악행과 다윗의 자비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사울은 세 번이나 다윗을 죽이려 했다(18,10-11; 18,25; 19,9-10). 그러나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주었다(24,1-7; 26,8-12). 사울의 왕권은 상당히 혼합적인 성격, 곧 카리스마적인 성격과 조직적인 체계가 뒤섞여 있어서 흥미롭다. 그러나 아직은 중앙집권적인 체계가 없었고 엄밀한 의미의 수도도 없었다. 임금은 무엇보다도 용사들을 거느린 전사라고 생각되었다(1사무 14,52 참조). 어느 제한된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카리스마적인 우두머리라는 임금의 개념에서 여러 지파를 다스리는 지속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적인 임금의 개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무엘기 상권 9장 16절은 사울을 ‘임금’(melek)이라 부르지 않고 성전(聖戰)에서 주님 군대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영도자’(nagid)라고 부르며, 그 영도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해낼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울은 국가체제를 갖춘 왕정시대의 임금이라기보다는 고대시대의 판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카리스마적인 면모를 지닌 사울의 왕권은 안정성이 부족했고, 그 명성을 쉽게 잃어버렸다. 사울도 이런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사울은 경계심과 공포심 속에 침몰해버렸던 것이다. 사울의 증오는 전쟁터의 동료이자 용사들 가운데 하나요, 자신의 사위인 유다 지파의 한 젊은이 ‘다윗’에게로 향했다.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전승의 다양함, 매력적이고 비극적인 그들의 일화는 다윗의 인기를 증명하며, 다윗이 왕권을 향해 확실히 부상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서사시적이며 비극적이고 동시에 희극적인 다윗의 이야기들은 일찍부터 대중성을 누렸고, 아마도 다윗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용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무엘기 상권 24장은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이야기를 한다. 다윗은 엔 게디 동굴에서 사울이 손아귀에 들어왔으나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손을 대지 않았다. 옷자락이 찢겨나가거나 베어져나간 것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감’을 상징한다. 사무엘기 상권 26장은 다윗이 군사들에 둘러싸여 깊은 잠에 빠진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갖고 나온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인 복수를 포기하고 주님께 자신의 송사를 온전히 맡긴 다윗에게 결국은 주님께서 온 이스라엘의 왕권을 맡기실 것’이라는 암시를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사울은 다윗을 라이벌로 생각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과 경계심이 다윗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로 나타났다. 사울이 나라를 지켜야 할 정예병들을 이끌고 다윗을 잡아 죽이러 찾아 나설 때부터 사울의 인생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반면에 다윗이 두 번씩이나 사울을 살려줄 때부터 다윗의 인생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결국 필리스티아 사람들과 벌인 싸움터에서 죽음의 길로 갔고, 한 사람은 헤브론에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묵상주제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영원한 라이벌 관계에 놓인 숙명적인 만남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경계심과 공포심, 시기와 질투와 증오는 금물이다. 그런 심리적인 불안정에 빠지는 쪽이 결국은 패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숙명적인 관계를 전하는 사무엘기 상권 18-26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013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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