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주간 기획] 성경필사 역사와 교구 성경필사운동
손으로 직접 쓰며 느끼는 말씀의 ‘참맛’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성경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옮겨 적는 성경필사는 하느님 말씀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성경 필사는 언제부터 어떻게 이뤄져 온 것일까. 성서주간을 맞아 성경필사의 역사와 교구의 성경필사운동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살펴봤다.
■ 파피루스와 양피지
성경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록되기 시작됐다. 종이가 대중화되고 인쇄기술이 발달된 현재는 성경필사가 특별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인쇄기술이 없던 당시 성경의 기록 방법은 모두 ‘필사’였다.
기원전 600년경에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됐지만 성경이 기록되던 중동지방으로 종이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 600년이 돼서다. 종이가 없었던 당시에 성경과 같은 많은 분량의 책을 기록하는데 적합했던 것은 바로 파피루스였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갈라 두들겨 나무줄기의 진액으로 붙인 후 건조시킨 것으로 기원전 4000년경부터 기록매체로 사용돼왔다. 고대 해양 왕국인 페니키아의 수도인 ‘비블로스’는 파피루스를 수출하는 곳으로 유명해 당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비블로스’라고 불렀는데 현재 성경을 뜻하는 ‘바이블(Bible)’의 어원이기도 하다.
파피루스와 함께 사용된 것은 바로 양피지였다. 양피지는 소·양·새끼염소의 가죽을 씻어 털을 뽑고 표백한 후에 표면을 돌로 갈아서 얇고 부드럽게 하고, 마지막에 초크로 마무른 것이다. 양피지는 비싸고 무거워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파피루스보다 내구성이 좋고 습기에도 강해 애용되던 재료였다.
양피지가 성경 필사재료로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유다인들이 바빌로니아 유배가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면서부터다.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제물로 바친 양과 염소는 양피지로 가공돼 성경필사에 쓰였다.
■ 수도회의 성경필사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성경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필사의 힘이었다. 특히 수도회의 필사는 성경을 후대에 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세네파 쿰란(Qumran)공동체 수도자들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활동하던 유다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 수도자들은 사해 연안동굴에 생활하면서 성경을 필사했다. 이들은 성경필사실을 갖추고 성경 연구와 성경필사에 매진했다. 그러나 70년경 로마군이 이스라엘로 진격하자 모든 필사성경을 동굴에 감추고 흩어졌다.
이 필사성경은 1947년 한 양치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이 사본들은 파피루스와 양피지로 이뤄졌는데 점토단지 속에 보관돼 20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고스란히 보관됐다.
마찬가지로 중세 수도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도 성경필사였다. 수도자들은 수년에 걸쳐 성경을 손으로 기록했고 그 성경을 그대로 보존해 다음세대에 남겼다. 구약성경의 사본을 유다교 수도자들이 남겼듯이 신·구약 성경을 전하는 일에도 수도회의 역할이 컸다.
베자 캠브리지 사본, 클레르몽 사본, 시나이 사본, 코리데티 사본 등 현재 전해지는 오랜 성경사본 중 많은 수가 수도회가 보관해오거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필사성경들이다.
수도자들을 비롯해 성경을 필사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수천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준 것이다.
- 이스라엘 사해지역에서 발견된 성경필사본인 ‘사해사본’.
■ 우리나라 신앙선조들 성경필사
우리나라에 하느님 말씀이 전해진 것에도 필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경 내용이 전해진 것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디아스(Diaz)가 성경구절을 한문으로 번역해 작성한 「성경직해(聖經直解)」였다. 이 책은 1784년 전후로 전래돼 일부가 한글로 번역됐다가 1892~1896년 총 9권에 걸쳐 한글본 「성경직해」로 인쇄됐다. 그러나 이 책이 인쇄되기 전 100여 년 동안 신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필사해 서로 돌려봐 박해를 딛고 신앙을 지켰던 초창기 한국교회 신앙에 큰 영향을 줬다.
■ 수원교구의 성경필사운동
수원교구는 1993년부터 복음화국 성경사목을 통해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증진시키고 말씀을 통해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고자 성경 관련 프로그램과 성경필사운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교구 성경필사운동이 처음 시작한 것은 1997년. 처음에는 완필자가 2명뿐으로 작은 시작이었지만 해마다 필사자가 증가해 지난 2012년까지 신·구약 완필 축복장 수여자는 총 1만 2000명에 이르고 올해도 590여 명이 성경을 1회 완필해 축복장을 받았고 2회 이상 필사한 이들도 260명가량 됐다.
필사운동이 시작된 이래 이제는 개인 필사뿐 아니라 가족 함께 쓰기나 소공동체·단체·본당별 이어쓰기 필사를 하는 등 전 신자에 이르기까지 필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개인, 본당의 작은 움직임은 지난 10월 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교구 설정 50주년 신앙대회 및 감사미사에 186개 본당이 본당 신자들이 이어 쓴 대형성경필사본을 봉헌하는 큰 결실을 이루기도 했다. 교구 복음화국 성경사목은 이 필사본을 한 달간 전시하고 성경과 성경필사에 관련된 기획전시를 통해 더 많은 신자들이 성경필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3년 11월 24일, 이승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