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뱀 뱀에 대한 성경의 첫 언급은 창세기다. ‘뱀은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했다.’(창세 3,1)라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하와를 유혹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이곳의 뱀은 원죄의 설명을 위해 등장한 배우일 뿐이다. 뱀의 특성에 관한 기록은 아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생각해봐도 그러하다(마태 10,16). 그렇지만 구약에 등장하는 뱀은 모두 부정적 의미다. 적군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 독사의 무서운 독이다.’(신명 32,33) ‘악인들은 어미 배에서부터 변절하고 뱀과 같은 독을 지녔다.’(시편 58,4) 민수기에는 이스라엘이 불뱀을 만나 혼이 나는 장면이 있다.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헤맬 때 주님께 불평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이 훗날의 유다인에게는 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단다. 그러자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뱀에 물린 상처가 나았다(민수 21,9). 예수님도 이 사건을 상기시키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 져야 한다.’(요한 3,14) 초대교회는 구리 뱀 사건을 메시아에 대한 예표(豫表, 앞날의 일을 미리 준다는 뜻)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독 있는 뱀은 대개 몸이 작다. 덩치 큰 뱀은 거의 독이 없다. 독뱀은 침샘의 하나가 독샘으로 변하고 독니를 통해 독을 뿜는다. 독액은 먹잇감을 죽이거나 마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지방에는 여러 종류의 뱀이 있는데 대부분 독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독 있는 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뱀이 기어 다니는 것도 저주를 받아 그런 것으로 해석한다. 사탄의 상징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훗날의 유다인 생각을 대변한 것이다. 뱀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다. 성경에서 뱀으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나하쉬(Nahash)다. 뱀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뱀과 비슷한 파충류를 가리키기도 한다. 에덴동산의 뱀(창세 3장)도 이 단어다. ‘뱀같이 슬기롭고’ 역시 이 단어다. 불뱀은 사라프(saraph)를 번역한 것이다. 뱀의 눈빛이 불처럼 보였거나 물린 다음의 아픔이 불에 덴 것 같았기에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