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24) 예수님과 로마 제국
역사적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시대는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세계였다. 사실 오늘의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로마 제국에 대한 이해 없이 예수님과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로마 제국은 신약성경의 사건, 인물, 표현 방식, 언어 등을 위한 중요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 로마 제국의 구조
예수님 당시의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은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과 민족들을 지배하였다. 오늘날의 명칭으로 표현하자면, 당시의 로마 제국은 북서쪽의 영국으로부터, 서쪽의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 유럽을 가로질러 동쪽으로는 터키와 시리아, 남쪽으로는 북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로마는 당시 6000-6500만 명의 다양한 종족과 문화의 주민들을 지배하였다. 로마 제국은 기본적으로 위계질서적인 계급 사회였으며, 권력과 부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의 삶은 매우 안락했으나, 그들을 제외한 다수의 민중은 겨우 생존을 유지하며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사회 안에서 중간 계층은 존재하지 않았고, 곤경에 처할 경우 사회적 안전망은 매우 부족하였다.
로마 제국은 귀족의 제국이었다. 즉 로마 제국은 귀족주의적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체 주민의 2-3퍼센트에 불과한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제국을 지배하였다. 그들은 공동선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중요한 정치적 직책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지배 엘리트들은 권력을 행사하고 부를 장악하였으며 높은 지위를 향유하였다. 그들은 제국의 거주민들의 사회적 경험을 형성하였고 삶의 질을 결정하였다.
■ 로마 제국의 통치
로마 황제는 지배 엘리트들과의 협력적인 관계 안에서 로마 제국을 통치하였다. 이것은 제국의 중앙에서뿐 아니라 지방의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티나의 경우 로마 제국은 헤로데 대왕과 같은 피보호자들과 동맹의 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헤로데 가문은 로마의 승인 하에 통치할 수 있었고 로마의 이익을 증진시켰다. 이와 같이 로마 제국은 후원자-피보호자의 관계(patron-client relation)로 이루어졌다. 지배 엘리트들은 이 후원자-피보호자의 관계를 통하여 그들의 부와 권력을 증진시켰다. 그들은 지배자의 지위를 강화하고 일반 민중의 순종과 복종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이 후원자-피보호자의 종속적 관계를 확대시켰다. 권력과 지위를 위한 지배 엘리트들의 경쟁은 시민 생활에서의 다양한 지도력의 행사 안에서 그들의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도록 만들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그들이 가진 힘으로 다른 민족들을 복종시키고 자원을 착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제국의 질서에 저항한 민족들은 위협적인 군사적 폭력에 의해 탄압받았다. 제국의 점령은 마을들을 황폐화시켰고 가족들을 붕괴시켰으며 생존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여러 층의 지배자들에 의한 착취로 민중의 삶은 경제적 압박으로 고통 받았고 전통적인 생활 방식, 특히 가족, 마을 공동체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적 형태들이 해체되었다. 이와 같이 로마 제국의 질서는 군사적인 참화, 경제적인 억압, 피지배 민중의 전통적 문화와 사회적 구조의 유린을 초래하였다.
로마 황제와 지배 엘리트들은 자원에 대한 소유권과 군사적인 힘을 통하여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갔고 지배 계층이 아닌 계층, 즉 민중을 통제하였다. 전체 주민의 75퍼센트를 차지했던 일반 민중의 농업 생산물과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지배 엘리트들은 사치스럽고 우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토지와 무역으로부터 부(wealth)를 축적하였고, 제국 전체의 시민 생활과 군대의 다양한 직책에 인력을 공급하였다.
■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
예수님과 신약 성경 시대에 로마 제국의 평화(Pax Romana)는 지배의 세계화를 가리킨다. 로마 제국은 세계를 통일시키고 그 세계를 위한 가치와 질서를 제공하였다. 그래서 로마 황제들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peacemaker)”으로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점령 하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한 삶은 다른 것이었다. 로마 제국이 주장하는 통치 질서의 실상은 결코 평화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 제국 안에서는 억압과 착취에 고통 받던 민중의 저항이 계속되었고 이를 탄압하는 폭력과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로마 제국의 평화는 억압과 착취, 그리고 군사력에 의한 침묵의 강요와 다름이 아니었다. 팔레스티나에서 벌어진 수많은 폭력사태는 로마 제국이 내세운 새로운 질서의 허상을 폭로한 것이었다.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팔레스티나에는 다양한 민중의 저항 운동들이 있었다.
『유다 고대사』 20권 97-98은 기원후 44-46년 동안 유다 총독이었던 파두스(Fadus)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다. “파두스가 유다 총독이었을 때 테우다스라는 사기꾼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유 재산을 모아 요르단 강으로 그를 따르도록 현혹시켰다. 그는 자신이 예언자이고 요르단 강을 갈라 그들이 걷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그는 많은 이들을 속였다. 파두스는 그들이 어리석음의 결실을 거두도록 허락하지 않고 기병대를 보냈다. 많은 이들을 죽였고 많은 포로를 잡았다. 테우다스는 생포되어 그의 목이 잘려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쿠스피우스 파두스가 총독이었을 때 유다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유다 전쟁사』 2권 261-263은 기원후 52-60년 동안 유다 총독이었던 펠릭스(Felix) 당시의 사건을 언급한다. 이 사건은 『유다 고대사』 20권 169-172에도 기록되어 있다. “유다인들에게 더 나쁜 피해를 준 이는 이집트인인 어떤 거짓 예언자였다. 그는 예언자라는 명성을 얻은 협잡꾼이었다. 그는 촌락에 나타나 3만 명의 얼간이들을 모았으며 그들을 이끌고 광야를 돌아 올리브 산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서 로마 군대의 주둔지를 제압하고 자신을 백성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로 세우도록 계획하였다. 그러나 펠릭스는 이 공격을 미리 예상하였다. 펠릭스는 중무장한 보병을 그에게 보냈는데 온 주민이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합류했다. 그 결과로 이집트인과 몇몇 추종자는 도망쳤으나 대부분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생존자들은 흩어졌고 각자 집으로 도망쳤다.”
■ 예수님의 대안
이와 같이 로마 제국은 예수님이 사셨고 활동하신 팔레스티나에서의 삶의 조건을 결정지었다. 예수님은 예언자적인 가르침과 행동을 통해서 로마 제국의 질서와 그것이 피지배 민중에 끼친 영향에 저항하고 도전하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로마의 군사적 폭력과 경제적 착취로 인한 결과들을 치유하고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운동을 시작하셨다. 그분은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제시하심으로써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희망이 움트게 하셨다. 예수님의 운동은 계약의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하는 것(renewal of covenantal community)이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3년 12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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