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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복음 이야기7: 팔레스티나 지리적 배경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3 조회수3,305 추천수1

[복음 이야기] (7) 팔레스티나 지리적 배경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느님의 선물



팔레스티나는 지도상으로 아시아 서단 북위 31˚15´에서 33˚20´, 동경 34˚30´에서 36˚사이에 위치하고, 북쪽 시리아 산맥에서 남쪽 네겝초원,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서쪽 지중해 연안까지 장방형을 이룬 지역을 말한다. 면적은 요르단 건너편 초원지대를 포함해 2만 5000㎢, '(북쪽)단에서 (남쪽) 브에르 세바까지' 길이가 235㎞, 동쪽 요르단 고르에서 서쪽 지중해 연안까지 폭이 40㎞이다.

'팔레스티나'는 '필리스티아'에서 유래한 말로, 이스라엘 민족은 판관 삼손 시대와 사울과 다윗 왕 시대에 이 민족과 치열한 전쟁을 해 승리했다. 유다인들은 정복한 적의 이름을 보존하기 위해 필리스티아인이 살던 일부 지방을 가리켜 히브리말로 '펠레쉐트'라 했고, 이 말을 그리스 사람이 이 나라 전체에 적용해 '팔레스티네'라 불렀다. 헬라어 본문을 번역한 라틴어 역본 「불가타 성경」은 '팔레스티니'라고 표기했다. 이 말이 그리스 로마 세계에 퍼져 오늘날까지 이 지역을 '팔레스티나'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유다인은 이 지역을 종교적 역사적 표현을 사용해 '가나안 땅''이스라엘 땅'(1사무 13,19) '거룩한 땅'(즈카 2,16) '약속받은 땅'(히브 11,9)이라 불렀고, 탈무드에선 '빼어난 땅' '하느님의 땅'이라 했다.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 26,9)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젖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는 기본적 양식을, 꿀은 귀한 양식으로 하느님의 충만한 축복을 상징한다. 기원전 1900년께 기록된 이집트 우화 「시누헤 이야기」에는 가나안 땅에 대해 "그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있었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더 많았다. 꿀도 풍부했고 올리브도 가득했다. 온갖 종류의 과일이 나무에서 열렸다. 그곳에는 보리와 밀이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가축이 있었다"고 부러워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형은 크게 일곱 지대로 나뉜다. '해안 평야'는 모래 언덕과 숲, 늪지대가 대부분인 쓸모없는 땅이다. 하지만 지중해 동쪽 연안 욥바에서 카르멜 산에 이르는 '사론'은 이스라엘의 가장 비옥한 땅에 속한다. 해안 평야와 중부 산악지대 사이 완충지인 '세펠라'는 넓이 19~24㎞의 평원으로 대표적 지역이 엘라 골짜기(1사무 17,2)이다. '중부 산악지대'는 이스라엘 영토 심장부로 예루살렘과 헤브론 같은 성읍이 자리하고 있다. '므기또 평원'은 중부 산악지대와 갈릴래아 언덕 사이의 동서 평원을 이루고 있다. 이 평원은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남북을 잇는 무역 도로가 통과했기에 수많은 전쟁이 벌어진 전략 지역이었다. 요한 묵시록은 인류 최후의 전쟁인 '하르마게돈'(16,16)이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갈릴래아'는 레바논 산들과 이어지는 산악지대로 비옥한 언덕들과 갈릴래아 호수가 있다. '요르단 골짜기'는 북쪽 갈릴래아 호수에서 남쪽 사해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로 요르단 강이 흐르고 있다. 특히 해수면보다 400m 낮은 사해는 지구 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요르단 골짜기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요르단 건너편'은 갈릴래아 동쪽(해발 580m)에서 사해 남동쪽(해발 2000m)까지의 오르막으로 강수량이 많아 훌륭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거주지역에 따라선 유다ㆍ사마리아ㆍ갈릴래아 지방과 해외 이산민으로 구분한다. 유다 지방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가난한 산지로서 이 지방 사람들은 신앙을 엄수했다. 북쪽 갈릴래아와 남쪽 유다 사이 위치한 사마리아 지방 사람들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에 점령당한 후 타민족의 이주로 말미암아 혼혈민이 됐으나 모세 5경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다인이 바빌론에서 돌아온 후 사마리아인과 유다인은 대립하게 됐다. 갈릴래아 지방은 전반적으로 아브라함과 모세로부터의 조상 대대의 신앙을 충실히 지켜 왔으나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서 신앙 행사는 매주의 안식일 집회가 중심이었다. 국제 교역로가 있어 외국인의 교류가 잦아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불렀다. 해외 이산 유다인은 '디아스포라'라고 해 특히 지중해 주요 항구도시에 많이 거주했다. 특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많은 유다인들이 살았다. 디아스포라 이산 유다인들은 각 거주 지역에서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을 충실히 지키며 히브리말 성서 외에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복음이 전파되자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쉽게 받아들였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2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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