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산책 구약] 역대기
천지창조에서 키루스의 칙령까지 이르는 역사 역대기는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를 시작으로 하여 페르시아의 임금인 키루스가 바빌론 유배민들의 본국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으로 끝나는 긴 역사를 서술합니다. 그런데 이 역사의 상당 부분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에 이미 보도된 역사입니다. 달리 말하면 역대기의 저자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에 보도된 다윗 왕국의 역사를 자신의 고유한 역사 신학에 바탕을 두고 불필요한 내용은 삭제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구성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역대기의 역사적 사료들은 역대기 저자가 의도적으로 변형시킨 것이기 때문에 역사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절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유배 후 시기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대기의 자료들은 재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꿈란 동굴에서 발굴된 사무엘기 수사본 덕분에 사무엘기와 역대기 사이의 정보의 차이는 역대기 저자가 사용한 원본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사무엘기와의 차이에서 일부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역대기의 본문이 열왕기보다 더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거나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자료들을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역대기 본문의 역사성이 재평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대기는 구약성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성전과 성전 제의에 큰 관심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역대기의 저자는 사제이거나 레위인 그룹에 속한 자로 여겨져 왔습니다. 다윗 임금과 여호사팟 임금, 히즈키야 임금, 그리고 요시야 임금에 대한 역대기의 보도와 열왕기의 보도를 비교하여 읽어보면, 역대기 저자가 성전 제의의 확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외에도 역대기 저자는 족보 자료를 많이 활용하며, 역사를 보다 응보의 원리에 부합되게 서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므나쎄 임금은 유다 왕국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왕이며, 열왕기에서는 유다의 임금들 가운데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임금이기도 합니다.(2열왕 21장 참조) 그런데 역대기의 저자는 그토록 악명 높은 임금이 55년간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임 기간 중에 바빌론으로 끌려가 곤경에 처했을 때 회개하여 하느님을 알아 모시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2역대 33장 참조) 역대기의 저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윗 왕국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는 북 왕국의 역사 대부분을 생략합니다. 따라서 역대기를 흥미롭게 읽는 방법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에 나오는 보도와 역대기의 보도를 비교하여 읽는 것입니다. 현재 학자들은 역대기가 에즈라-느헤미야기보다 늦게, 대략 기원전 4세기 후반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곳간에서 낡은 것과 새것을 자유자재로 꺼낼 수 있는 율법학자처럼, 그의 시대에 유통되던 성경 자료들을 활용하여 역사와 율법의 조화를 도모한 훌륭한 성경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3월 9일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4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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