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40이라는 숫자 고대 근동에서 4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완전 숫자였다. 10 또한 9가 채워졌기에 완전 숫자였다. 둘을 곱한 숫자가 40이다. 더는 완벽한 숫자는 없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40이란 숫자는 이렇듯 완전과 완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40은 노아 홍수 때다. 비 내리는 기간이 40일이었다(창세 7,12). 우연 같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내린 비를 가리킨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지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완벽하게 헤매었음을 알리고 있다. 모세 역시 십계명을 받기 전 시나이 산에서 40일간 단식했다(탈출 24,18). 온 힘을 다해 준비했다는 암시다. 그런데 백성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자 십계 판으로 부순 뒤 또다시 40일간 단식했다. 이번에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신명 9,18). 그 후 새로운 십계 판을 받게 된다. 이렇듯 40을 채웠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다. 다윗과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임금들이다. 묘하게도 두 사람 모두 40년간 다스렸다(1열왕 2,10). 치세기간만으로도 근동에서는 완벽한 통치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중동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의 하나다. 그 가운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제목이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40인의 도둑에서 우리와는 다른 뉘앙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훗날 교회는 수난과 부활의 준비기간으로 사순절을 제정했다. 이 역시 구약의 40일 사상이 들어온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사순절은 40일이 넘는다. 사순절의 주일과 부활 전 성삼일을 제외해야 40일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40이라는 숫자보다 사순절의 정신을 더 강요하고 있다. 초대교회 때부터 재를 지키며 수난에 동참하려 했던 정신이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을 광야에 머무르시며 단식하셨다(마태 4,1-2). 이 역시 구약 사상이 가미된 서술이다. 부활하신 뒤 승천하실 때까지도 40일이다.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성령께서 오심을 준비하게 하셨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알게 모르게 실천했던 40일 정신을 복음서 작가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2014년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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