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산책 구약] 욥기
욥, 하느님의 신비를 묻다 “우츠라는 땅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욥이었다.”(욥 1,1) 우츠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스라엘이 아닌 듯합니다. 욥기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욥기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죄의 결과일까요? 욥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흠 없는 사람인 욥이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 때문입니다. 욥은 많은 자녀를 거드린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인간이 “까닭 없이”(욥 1,9)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는지를 문제 삼는 사탄이 그를 시험해 보겠다고 나섭니다. 욥은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데에 불평하지 않지만, 곧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하느님을 고발합니다. 친구들이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합니다.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욥과 친구들 사이의 논쟁입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의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고, 결국은 하느님의 답변을 듣고야 맙니다. 그러나 그 답변은 그의 고통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창조의 놀라움은 인간의 지혜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기후 현상과 동물들의 세계,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하느님의 다스리심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욥 42,3) 욥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 후에 욥은 잃었던 건강과 재산을 되찾고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욥기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않습니다. 욥기 끝부분(38장 이하)에서 하느님께서는 욥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하십니다. 어떻게 해가 뜨고 타조가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는지 욥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당신 지혜로 다스리고 돌보고 계십니다. 이 질문들을 통해서 욥은, 이 세상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인간 지혜의 한계에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 역시 납득할 만한 설명을 구할 수 없는 문제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의 지혜가 가서 닿을 수 없는 곳, 그곳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기후 현상이든, 동물들의 세계든, 인간의 고통이든, 인간이 깨달아 알 수 없다고 해서 이 세상이 부조리하고 하느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한계일 따름입니다. 그 한계 너머에 심연의 나락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 어둠 속에 하느님께서 계심을 믿는 것, 이것이 욥이 도달해야 했던 믿음입니다. 인간이 “까닭 없이”, 어떤 보상 없이 하느님 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 가능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서울주보 4면,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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