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15) 돈
유다는 약 500만 원에 예수 팔아
- 악티움 전투 승전 기념으로 제작된 로마시대 구리 주화.
화폐가 통용되기 이전 구약의 유다인들은 귀금속을 달아 사용했다(창세 23,16). 정확한 무게를 보증하기 위해 유다인들은 “올바른 저울과 저울판은 주님의 것이고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그분의 소관이다”(잠언 16,11)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돈을 세지 않고 다는 관습은 팔레스티나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러다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생활 때 물물교환이나 귀금속을 저울로 달아 주는 것보다 공신력을 가진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귀환 후에도 계속해서 헬라와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갖가지 돈을 통용하게 됐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화폐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의 금화 ‘다리크’였다. 그 후 헬레니즘 시대 돈과 셀로이코스가의 안티오쿠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초상이 새겨진 화폐도 통용됐다. 로마인들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후 인두세를 로마 돈으로 내도록 했다.
- 로마 제국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금화.
복음서에도 예수님 시대 통용되던 ‘드라크마’(루카 15,8) ‘데나리온’(마태 22,19; 마르 2,15; 루카 20,24), ‘아스’(마태 10,29; 루카 12,6), ‘세켈’, ‘미나’, ‘탈렌트’ 등 많은 돈 이야기가 나온다. 드라크마는 헬라 화폐이고, 아스ㆍ데나리온는 로마 돈이며, 미나는 페니키아 통화다.
1드라크마와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1스타테르(마태 17,27)와 1세켈, 은돈 1아르기리온은 4드라크마(데나리온)로 노동자의 ‘나흘 품삯’이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고 받은 은돈 아르기리온 서른 닢(마태 26,15)은 120데나리온으로, 유다는 노동자의 넉 달 품삯을 받고 주님을 배신한 것이다.
또 금돈 1크리소스(마태 10,9)는 25데나리온, 은돈 1탈렌트는 240코리소스(마태 18,24)였다. 그러므로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365일을 1년으로 할 때 예수님 시대 노동자의 16년치 일당이다. 2014년도 우리나라 최저 시급 5210원으로 8시간 일한 4만 1680원을 예수님 시대 하루 품삯이라 한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은 한화 500만 1600원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아울러 복음서에 많이 나오는 은화 1탈렌트는 한화 1억 8250여만 원에 해당한다. 또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에 나오는 1미나는 60분의 1 은화 탈렌트 가치였다.
이 밖에 ‘아스’는 1데나리온의 16분의 1로 예수님 시대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마태 10,29)이었다. 우리 말로 ‘닢’으로 번역된 ‘콰드란스’는 1데나리온의 64분의 1 가치였다(마태 5,26). 또 ‘가난한 과부의 비유’에 나오는 ‘렙톤’(마르 12,42)은 1드라크마(데나리온)의 128분의 1 가치였다. 즉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렙톤 두 닢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유다인 화폐도 있었다. 시몬 마카베오가 기원전 150년쯤에 주조한 구리 돈으로 유다인의 상징인 ‘레몬나무와 종려나무 가지’를 새기고 ‘해방된 시온’ 또는 ‘대사제와 공동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유다인 화폐는 사람의 초상이나 동물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리는 것을 금한 십계명 말씀에 따라 주로 식물이나 기하학적 상징을 도안했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탈출 20,4).
감히 이 규정을 어기는 자가 없어 헤로데 대왕조차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지 않고 앞면에 ‘헤로데 왕’이란 글자만, 뒷면엔 꽃과 과실, 투구나 방패 등을 새겼다. 하지만 헤로데의 아들인 필리포스만이 자신의 초상을 새긴 화폐를 발행해 유다인들에게서 원성을 샀다.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성전세를 바칠 때는 반드시 유다인 화폐를 사용해야 했기에 성전 앞뜰에는 환전꾼(요한 2,14)들이 늘어서 있었다.
네 복음서 가운데 유독 마태오 복음서에서 다양한 화폐가 소개되는데 아마 그가 세리 출신이어서 돈에 밝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인가 보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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