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나는 누구인가 (9) 하느님과의 계약 조건 아브라함은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서 모든 것을 영원하신 분 앞에 내려놓았다. 그때 그분께서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그와 계약을 맺으신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하늘을 쳐다보아라…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1-5). 아브라함은 그분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 이 계약에서 눈에 띄는 바는 오로지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계약의 주체가 되신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을 상대로 쌍방 간의 무슨 합의나 조건을 계기로 맺는 계약이 아니다.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선포하시면 아브라함은 그저 수락할 뿐이다. 그분은 계약의 선포자시며 인간은 수용자일 뿐이다. 아브라함의 몫은 그저 그분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그 계약이 성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일이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믿는 이들의 아버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등에 업고 만민의 아버지 몫을 다해야 한다. 계약의 백성이 되려면 크게 세 가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첫째로 뭇 민족의 아버지가 되려면 자식을 낳아야 한다. 그런데 사라는 불임상태인데다 이미 둘 다 고령이 아닌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이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이 문제해결 방안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인내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나 조바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라는 일종의 ‘씨받이 관습법’을 선택한다.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16,2). 옛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특히 아시리아 법에 따르면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내주어 그녀가 낳은 아기를 양자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 실상 사라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했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시는 주님 말씀까지도 의심한다. “내년 이때에…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18,10)라는 주님 약속에 사라는 혼잣말을 한다. “이렇게 늙어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18,12). 믿음에 기초하지 않은 해결책은 비극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여주인 사라와 여종 하가르 사이에 갈등이 결국 가정불화의 불씨가 되어 하가르와 그녀가 낳은 아들은 추방당한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이스마엘)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21,14). 계약의 백성이 풀어나가야 할 둘째 과제는 ‘이웃사랑의 삶’이다. 소돔 성읍은 결국 사랑에 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멸망에 이른다. 소돔을 방문한 천사들은 롯에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소돔을 파멸시키려 하오. 저들에 대한 원성이 주님 앞에 너무나 크기 때문이오. 주님께서 소돔을 파멸시키시려고 우리를 보내셨소”(19,12-13). 다음 구절은 소돔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장면이다. “(소돔을 방문한 두 사람이)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성읍의 사내들 곧 소돔의 사내들이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온통 사방에서 몰려와 그 집을 에워쌌다. 그러고서는 롯을 불러 말하였다. ‘오늘 밤 당신 집에 온 사람들 어디 있소? 우리한테로 데리고 나오시오. 우리가 그자들과 재미 좀 봐야겠소…’”(19,4-5). 계약의 백성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ㄴ)는 말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실천한 이웃사랑은 무엇인가. * 신교선 신부는 1979년 사제수품 후, 스위스 루체른 대학교에서 성서주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과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 현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와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인천 작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13일, 신교선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