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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34: 주님 무덤 성당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9 조회수4,136 추천수1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34) 주님 무덤 성당



예루살렘 구시가의 북서쪽에 있는 그리스도인 지역(Christian Quarter)에는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이 위치했던 곳에 “주님 무덤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이 있다. 이 성당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래서 주님 무덤 성당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순례 장소이다.


■ 주님 무덤 성당의 역사

현재의 주님 무덤 성당이 있는 곳은 기원후 1세기 초에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위치한 사용하지 않는 채석장이었다. 예수님의 무덤에 대한 전승은 예루살렘 공동체에 의해 보전되었다. 최소한 66년까지는 이 무덤에서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전례가 거행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135년에 아프로디테에게 봉헌된 신전을 세우기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 이곳을 돌로 채웠다. 그래서 골고타 위에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의 광장과 신전이 세워졌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는 324년에 예루살렘에 성지 순례를 왔는데, 그녀는 당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마카리우스로부터 골고타와 무덤이 있었던 위치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성당을 세울 장소를 결정하기에 앞서 전통적인 위치를 면밀히 조사하였다. 황제는 전승이 전하는 예수님 무덤 자리에 있던 신전을 부수고, 326년에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으며 335년에 봉헌하였다. 마침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길이 150m, 폭 75m의 대성당이 세워졌던 것이다. 성당은 네 요소를 포함하는데, 주요 도로와 통하는 계단이 있는 안뜰, 대성당(basilica), 골고타로 확인된 성당 안 남동쪽 구석의 바위, 그리고 무덤이다. 성당이 봉헌될 때 무덤이 절벽과 분리되지 않았는데, 이 둘을 잘라내는 엄청난 작업은 348년경에 완료되었다. 이 대성당은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그 후 예루살렘 총대주교였던 모데스투스(Modestus)는 큰 수정 없이 재건축하였다.  638년에 칼리프 오마르(Caliph Omar)가 예루살렘을 그리스도인의 통제에서 이슬람의 통제로 이전하는 협정에 조인하러 왔을 때, 총대주교로부터 주님 무덤 성당에서 기도하도록 초대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초대를 거절하였다. “만일 내가 이 성당에서 기도한다면, 당신은 성당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 신도들이 ‘오마르가 여기에서 기도하셨다.’라고 하며 이 성당을 점령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대함은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만일 이 시기에 성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면, 1009년에 성당이 칼리프 알-하킴(Caliph al-Hakim)에 의해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알-하킴은 성당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후 가난한 예루살렘 공동체는 보수할 형편이 못 되었다.

1042년에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쿠스(Constantinus IX Monomachus)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되었는데, 성당의 재건축을 위해 제국의 기금을 제공하였다.(1042-1048년) 그러나 재건축을 위한 기금은 불충분하였다. 그래서 첫 대성당의 중요한 부분들이 방치되었다. 1099년 7월 15일에 십자군이 성당에서 테 데움(Te Deum)을 노래하였다. 그 후 십자군은 점차적으로 성당을 개조하고 보수하였다. 1149년 7월 15일에 로마네스크식 성당이 봉헌되었고, 1170년경에 종탑이 세워졌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방문하는 주님 무덤 성당은 십자군에 의해 보수된 것이다. 이후에도 성당은 여러 차례의 파괴를 겪는다. 1808년에 화재가 있었고 1927년에는 지진이 있었다. 1959년에는 세 주요 교회인 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성당의 보수 계획에 합의하였다. 그 후 1961년부터 필요한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 주님 무덤 성당의 내부 구조

현재 주님 무덤 성당은 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 교회, 에디오피아 교회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다. 이들 중에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우선권을 가진다. 여섯 교회는 1852년에 체결된 “현상 유지법(Status quo)”에 의해 성당 안에서의 소유권과 전례, 전통들을 인정받는다. 한편 성당 정문의 열쇠를 보관하는 권한과 성당의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은 두 이슬람 가정이 가지고 있다.

성당 내부의 구조들 중에서 주님 무덤 경당, 예수 부활 경당, 그리고 예수님 시신을 염하던 받침대는 여섯 교회의 공동 소유이다. 가톨릭 교회의 소유는 골고타의 일부, 주님 무덤 경당의 입구, 마리아 막달레나 경당,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성당 등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는 골고타의 일부, 아담 경당, 성당의 중앙 경당, 성당 입구에 위치한 경당과 수도원 등이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헬레나 경당, 예수님의 시신을 염하던 모습을 세 명의 여인들이 지켜봤던 곳, 성 요한의 경당 등을 소유하고, 콥트 교회는 주님 무덤 경당 뒤편에 위치한 작은 경당을 소유한다. 그리고 시리아 정교회는 아리마태아 요셉의 가족 무덤 경당을 소유하고, 에티오피아 교회는 성당 입구 경당과 아리마태아 요셉의 무덤을 소유한다.

성당 정문 안뜰의 왼쪽에는 11세기의 세 경당이 있는데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이다. 그 맞은편에는 콥트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입구가 있다. 성당의 정문은 12세기의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계단은 십자군 시대에 골고타로 연결되는 입구였는데 1187년에 폐쇄되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 계단을 통해 지상에서 5m 높이에 있는 골고타의 경당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가톨릭 교회 경당의 창문을 통해 프랑크인들의 경당(Chapel of the Franks) 내부를 볼 수 있다. 골고타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경당에 위치한 십자가 아래쪽에는 아담의 경당(Chapel of Adam)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이 아담이 묻혔던 곳이라는 전승 때문에 생긴 것이다. 즉 유다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아담의 무덤은 세계의 중심지이며 인류의 심장과 같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밑에 아담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골고타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예수님의 시신을 염하던 받침대(Stone of Anointing)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 전에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싼 것(요한 19,38-40)을 기념하는데 12세기에 처음으로 생겼다. 지금의 것은 1810년의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무덤 형태는 19세기의 것이다. 사실 1009년에 하킴에 의해 파괴된 돌로 된 무덤을 대체했던 11세기의 것은 1808년의 화재로 파손되었다. 현재의 모형은 윌킨슨(J. Wilkinson)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그는 6세기 순례자들의 모형과 10세기 이전의 돌로 만든 모형을 바탕으로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보수되었던 무덤을 복원하였다.

한편 일부 영미 개신교도들은 현재의 주님 무덤 성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순례를 한다. 그들에 따르면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에서 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정원 무덤(The Garden Tomb)”이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이 위치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영국 고든 장군의 주장에 따른 것인데,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4년 10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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