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116)
엘리야와 엘리사, 베드로와 바오로 (1) 이스라엘 남북왕국의 역대 임금들을 다루는 열왕기 안에는 예언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주권과 하느님 말씀의 실현이라는 역사서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그 제자들에 의해 보존된 기억에 근거하는데, 엘리야 이야기와 엘리사 이야기가 대부분을 이룬다. 엘리야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19장과 21장 그리고 열왕기 하권 1장에 나타난다. 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2-13장에 나온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이 많았다.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서 백성을 선동해 일시적으로 반(反) 아합 집단을 규합했다. 이것은 일종의 반란이었다. 곧 공권력이 개입하였고, 엘리야는 목숨을 구하려고 단신으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야는 사렙타의 과부처럼 비참하게 당하기만 하는 민중의 친구였고, 지배자의 착취를 강력히 저주했던 예언자다. 엘리야는 민중의 염원이요 우상이었다. 엘리야는 ‘엘리야훼’의 줄임말이다. 엘리야훼는 ‘주님은 나의 하느님이다’라는 뜻이다. 갈림 없는 믿음을, 시련 속에서 성숙된 믿음을 보여준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열망과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단호함을 배웠다. 바로 여기에 엘리야의 영향이 있다. 엘리야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그의 영적인 제자들은 엘리야의 체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았다. 엘리야 덕분에 그들은 바알이 이스라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더러,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8,39)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야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역사나 그의 생애를 고정시키려 고심하지 않았다. 엘리야는 예고 없이 나타났고 또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주님께서 무언가 하셔야 하는 곳에 나타났고 그러고 나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근본적으로 볼 때,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은 주님에 관한 이야기다”(G. von Rad, ‘구약성서 신학 II’, p.24).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서 버림받기를 거절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야훼께서는 당신 백성을 심판하지만 남은 자들을 준비해놓으신다. 엘리야의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말했듯이 주님 앞에서 충실히 있는 것이다(1열왕 17,1; 18,15).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광을 입고 등장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와는 많은 점에서 달랐다. 엘리사는 넉넉한 집안출신이었다. 그 당시에 황소 열 두 쌍으로 밭을 갈 정도였으면 부유한 지주집안임이 틀림없다(1열왕 19,19 참조). 또한 엘리사 주변에는 수넴 여인 같이 부유한 후원자들이 있었다(2열왕 4,8.13 참조). 엘리사는 일시적으로 민중을 동원해 반란 같은 것을 도모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적, 군사적 실권자들을 지원함으로써 뜻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2열왕 9,1-3 참조). 곧 아합의 사후 기울어져가는 북왕국의 정세를 파악하고, 예후를 지지해 혁명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엘리사는 ‘국사’(2열왕 6,21)가 되었다. 또한 엘리사는 길갈, 베텔, 예리코 등지의 예언자 집단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고 있었다. 이 예언자 집단은 필요하다면 민중을 동원할 수 있는 지방의 종교 엘리트였을 것으로 본다. 엘리야가 순수하고 정열적인 혁명가였던 반면, 엘리사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혁명가였다. 묵상주제 “엘리야여,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집회 48,9) [2014년 11월 23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117)
엘리야와 엘리사, 베드로와 바오로 (2)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의 관계는 신약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교회가 6월 29일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지내지만, 엄밀히 따져본다면 이 두 분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일단 출신가문과 교육면에서 공통점이 없다. 베드로 사도의 집안은 요즈음 말로 하면 별 볼 일없는 집안이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대대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던 어부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라고는 제대로 한 적 없이,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는 일을 익힌 사람이다. 따라서 외국어라고는 전혀 할 줄 몰랐다. 모국어인 아람어밖에는 다른 말을 몰랐다. 그것도 일상용어 정도만 말할 줄 알았지 쓰거나 읽을 줄도 몰랐다. 그러나 기본적인 믿음은 있던 사람이다. 나뭇잎 같은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갔다가 사나운 폭풍우를 만날 적이면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했기 때문에, 하느님께 의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따라나섰다가 완전히 변화된 인생을 살았다.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바오로 사도는 일단 출신이 좋은 사람이다. 바리사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히브리어를 익혀 구약성경을 공부했으며,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성장했다. 또한 로마제국의 동서를 잇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덕분에, 그 당시 공용어인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문물을 익힐 수 있었다. 훗날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그리스어 실력을 자신의 편지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마 시민권이 태어날 때부터 있었기에 훗날 전교여행 중에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십분 활용했다. 또한 젊은 시절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유명한 스승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하는 특권도 누렸다. 바오로 사도는 확실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서 조상의 율법을 고수하려는 열정에 불타던 바오로는 나자렛 예수를 따르던 무리를 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성격 면에서 보더라도 두 분 사이에 공통점이 전혀 없다. 베드로 사도는 성격이 다혈질이고 급한 편이다. 어디가나 나서기를 좋아하고, 목소리가 큰 편이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던 나자렛 예수라는 사람이 던진 “나를 따르라.”는 말 한 마디에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선 것을 보면, 좋게 말하면 신속한 결단력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마음 내키는 것에는 앞뒤 가리지 않는 다혈질임이 틀림없다. 만일 바오로라면 그렇게 따라나섰겠는가? 아마도 이리 따지고 저리 따졌을 것이다.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은 원래 그렇게 따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뜻 따라나섰다. 또한 나중에 그 급한 성격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꾸중을 듣기도 하고,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는 심한 말까지 듣기도 했다. 반면, 바오로 사도는 매우 용의주도한 사람이다. 그리스의 문학과 수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논리적인 명석함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본래 성격이 차분하고 앞뒤를 재어가며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갈라티아서를 읽어보면 흥분한 나머지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의 감정을 상당히 자제하며 상대방을 설득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묵상주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사도 9,5-6). [2014년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118)
엘리야와 엘리사, 베드로와 바오로 (3) 이렇게 전혀 다른 출신과 성격의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두 분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결국 주님을 위해 함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면서도 두 사람이 갈등을 일으켰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갈라티아서 2장에 따르면, 그것은 유다교의 율법준수에 관련된 문제 때문이었다. 베드로 사도가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교우들과 한 자리서 음식을 먹을 때,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들어오자 그 사람들이 두려워 슬그머니 그 자리서 물러 나왔다. 앞뒤가 정확한 바오로 사도가 베드로 사도의 이런 행동을 묵과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서 이렇게 면박을 주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갈라 2,14). 안티오키아에서 이 충돌 외에는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일했음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이스라엘 후손들 가운데 초대교회를 세워서 초석을 놓았고,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이방인들의 스승이 되었다.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로마에 가게 된 두 사도는 64년경 네로 황제 박해 때 그리스도를 위해 함께 피를 흘려 순교했다. “두 사도는 이렇듯 서로 다른 방법으로 만백성을 그리스도의 한 가족으로 모음으로써, 함께 그리스도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같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결합되었다”(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감사송). 출신과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주님께서 사도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께서는 왜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교회의 두 기둥으로 삼으셨을까? 그것은 두 사람 모두다 교회에 필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같은 사람만 있어도 안 되고 바오로 같은 사람만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셨기 때문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불러 교회의 기초요 기둥으로 삼으신 것이다. 본당도 마찬가지다. 베드로 같은 사람만 있으면 본당이 너무 시끄럽게 되고, 바오로 같은 사람만 있으면 본당의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게 된다. 베드로 같은 사람이 많은 본당은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적어, 행사를 치르다 한 해가 지나간다. 바오로 같은 사람이 많은 본당은 서로 잘났다고 하며 영적인 교만으로 흐를 염려가 있다. 본당신자들 가운데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런 성격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와 똑같은 성격의 사람들만 있다면 본당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도 필요해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평범한 진리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과 충돌이 생길 수 있다. 본당의 단체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구역장들과 단체장들이 구성이나 성격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일해야지 갈등과 충돌로 가서는 안 된다. 구역장과 단체장은 본당의 기초요 기둥과 같은 존재다. 말하자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 같이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묵상주제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교회에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두 사도의 삶을 보면서 서로 협력해 일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두 사도의 삶을 보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날의 베드로 사도 또는 바오로 사도가 되어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2014년 12월 7일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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