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121)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2열왕 5,1) 열왕기 하권 5장은 시리아 장수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는 이야기를 전한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사마리아까지 찾아와 엘리사 예언자의 말에 따라 요르단 강에 내려가 몸을 씻고 나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다. 고대에 나병은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 예언자의 집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는 치유가 된 다음에라야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엘리사 역시 집에서 나오지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2열왕 5,10). 그 누구든 나병에 걸리고 싶어 하지 않고 또 나병에 걸리면 나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자진해서 나병에 걸리고 나병환자들과 함께 생활한 분이 있었다. 19세기 말, 하와이 군도에 나병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이 아직 개발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무섭게 번지는 나병에 이렇다 할 처방이 없었다.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외딴 섬인 몰로카이 섬에 나병환자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그때의 상황을 로버트 엘스버그(Robert Ellsburg)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 병을 앓는 하와이 사람들은 강제로 가족과 공동체에서 격리돼 섬으로 이송되었다. 나환자들은 몰로카이 섬 가까이서 바닷물에 내던져졌다. 뭍으로 헤엄을 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몰로카이 섬에서 동굴을 찾아 거기에 살든지 움막을 치고 살든지 그들 나름대로 하도록 그냥 내팽개쳐졌다.” 이때 벨기에 출신 33세의 젊은 사제 다미안 신부님은 이렇듯 비참한 나병환자들의 참상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미안 신부님은 몰로카이 섬에 가서 나병환자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자원해 나섰다. 다미안 신부님은 몰로카이 섬에 도착해 공동체를 조직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힘껏 일했지만 나병환자들은 그를 비웃었다. “하느님 사랑 좋아하네! 하느님 사랑이 있다면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썩어 문드러지게 내버려둬? 그따위 사랑은 당신처럼 건강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잠꼬대라구!” 이 말을 들은 다미안 신부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를 나병환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과 제가 한마음이 되게 해주소서.”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환자들과 같이 기거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생활했다. 다미안 신부님이 그들과 다른 것은 나병에 걸리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렇게 5년 정도 활동하다 다미안 신부님도 나병에 걸리게 되었다. 드디어 나병에 걸린 것을 알자 다미안 신부님은 기뻐하며 강론대에 서서 이렇게 강론을 시작했다. “나의 문둥이 형제자매 여러분!” 성당 안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 말은 그가 건강한 사람으로 나병환자들을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그도 나병환자로서 그들과 동고동락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에 걸린 다음 4년을 더 일하다 1889년 선종했다. 그 뒤 백 여 년이 지난 199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다미안 신부님을 시복(諡福)했다. 묵상주제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2014년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122)
“지금이 돈을 받아 옷과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양과 소, 남종과 여종을 사들일 때냐”(2열왕 5,25) 나아만은 엘리사 예언자에 줄 선물을 수레 가득 싣고 사마리아로 갔다. 열왕기 하권 5장은 그가 싣고 간 선물이 은 열 탈렌트과 금 육천 세켈 그리고 예복 열 벌이었다고 한다. 은 열 탈렌트는 약 410kg, 금 육천 세켈은 약 69kg이나 되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엘리사 예언자가 이런 엄청난 선물을 거절하고 나아만을 그냥 돌려보내자 게하지는 그 물건에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은 두 탈렌트(약 82kg)와 예복 두 벌을 챙겼다. 이 때문에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지에게 옮겨갔다. 개미와 매미가 같은 동네에 살았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개미는 오직 모으는 데 온 힘과 수단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나 매미는 정반대였다. 그 날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다시는 못할 것처럼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어느 날 둘은 뽕나무 위에서 만났다. 매미가 먼저 물었다. “개미야,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니?” “나는 오디를 가져가려고 왔다. 매미야, 너는 무엇 하러 왔니?” “나는 고마운 뽕나무를 찬미하러 왔다.” 개미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불쌍한 매미야, 정신 좀 차려라. 이 바쁜 세상에 찬미가 다 뭐냐! 어서 나랑 맛있는 오디를 물어 나르자.” “불쌍하기는 네가 더 불쌍하다. 먹을 만큼만 가지면 됐지, 그렇게 정신없이 모아 뭐해?” “많이 가지는 것이 힘이야. 부자에게 비굴해지지 않는 녀석을 본 적이 있니?” “그것은 함정이다. 지나치게 소유하면 곳간이 도리어 너를 부리게 될 걸.” “듣기 싫어!” 개미는 와락 화를 내며 떠났다. 개미는 계속 모았다. 한날한시를 쉬지 않았다.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늘 종종 걸음질을 했다. 한 곳간이 차면 또 한 곳간을 지었다. 개미의 눈에는 곳간의 빈자리만 보였다. 그러나 매미는 그날의 먹이는 그날로 족했다. 작은 이슬 한 모금에도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을 매미는 노래로 옮겼다. 매미의 목소리는 날로 맑아져갔다.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는 날이었다. 개미와 매미는 이팝나무 허리에서 비를 피하던 중 또 만났다. 이번에는 개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이렇게 뇌성벽력이 치는 날씨에도 찬미의 노래를 하겠니?” “그럼, 하늘의 권능을 찬미해야 하고말고. 그런데 넌 그 동안 모은 걸로 보람 있는 일을 좀 하고 사니?” “보람 있는 일이라니? 나는 아직 그런 일을 하기엔 재산이 부족해. 곳간이 차지 않았단 말이야.” “너는 도대체 얼마를 모아야 속이 편해지겠니?” 이야기하는 도중 소나기가 멎었다. 개미와 매미는 다시 헤어졌다. 개미는 이제 무엇이든 가져가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서고 물어갈 것이 보이지 않으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가져갔다. 곳간을 짓고 또 지었다. 이미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을 생각했다. 한편 매미는 황량한 벌판에서 놀라운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자주 누렸고, 그래서 늘 감사하고 행복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개미와 매미는 죽었다. 속의 것을 모두 노래로 다 불러버린 매미는 한 꺼풀 남은 마지막 허물마저도 훨훨 날려버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일생을 모으기만 한 개미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곳간의 재산을 남에게 남겨두고 가는 것이 원통했고,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지 못한 것이 그제야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개미의 해는 지고 없었다. <정채봉, ‘내 가슴속 램프’ 중에서> 묵상주제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2015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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