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별을 따라간 동방 박사
진리의 별 따랐던 페르시아의 현인들
베들레헴에는 천오백여 년의 세월을 거쳐온 ‘예수님 탄생 성당’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처음 봉헌했으며, 서기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유난히 전쟁이 많았던 이스라엘에 이토록 오래된 성당이 보존된 계기는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님’ 성화 덕분이었다. 서기 7세기 페르시아군이 침공했을 때, 그들은 탄생 성당 성화에서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을 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감동한 페르시아인들은,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줄 알고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성지가 이런 생각지 못한 이유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찌 보면, 멀리서도 메시아를 알아본 동방 박사들은 그 후에도 메시아의 탄생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 셈이다.
-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제단의 별’.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 기준의 동쪽이므로 메소포타미아 곧 현재의 이라크, 이란 방향이다. 고대 페르시아는 이란 땅이 중심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페르시아 사제 계층으로 추정되며 왕실에서 임금을 섬겼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옛날 탄생 성당의 성화는 동방 박사들을 옳게 표현했던 셈이다. 이들은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를 신봉했다고도 여겨지는데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책으로도 유명한 ‘짜라투스투라’다. ‘동방 박사’는 페르시아어 ‘마구쉬’가 어원이며, 그리스어 ‘마고스’를 거쳐 라틴어 ‘마구스’가 되었다. 나중에는 ‘매직’, 곧 ‘마법’이라는 영단어로도 발전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점성술가들이었다고 한다. 이 현인들은 점성술과 주변 지역의 정치, 특히 주변국 임금들의 즉위와 몰락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그러니 헤로데는 심상치 않은 별의 움직임도 문제거니와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다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로마의 힘을 업고 왕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점성술사들이 과히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하느님은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임금들도 도구로 사용하시고(예레 43,10) 때로는 이방의 점술도 사실을 말하게 하신다(에제 21,26-28). 그래서 이 현인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한 이방 세계의 대표자들이며, 예수님을 성자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으며(마태 2,1), 미카 5,1에 근거한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갔다(마태 2,6). 이들은 헤로데도 알현했으나, 다시 와달라는 그의 부탁에도 돌아가지 않았다(마태 2,12). 우리는 동방 박사들을 셋으로 생각하지만, 마태오 복음은 몇 명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셋으로 여겨온 까닭은, 예수님께 바친 선물이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이들이 바친 ‘몰약’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제사에 사용되는 ‘유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금’에서는 ‘왕권’을 떠올렸다.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도 연상시킨다(1열왕 10장).
- 이탈리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제단’. 스바 여왕 또한 선물로 금과 향료 등을 가져왔다. 곧 마태오 복음은 다윗 후손 예수님과 다윗 아들 솔로몬의 공통점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다. 솔로몬, 곧 ‘쉴로모’의 어근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다. 솔로몬은 이름값을 하여 그 시대에 전쟁이 없었다. 아기 예수님도 ‘평화의 군왕’으로서, 솔로몬을 능가하는 ‘끝없는 평화’를 가져오셨다(이사 9,5).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찾아내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는데, 이것은 임금에게 행해지는 예의였다(1사무 24,9 1열왕 1,16). 페르시아 왕실을 섬긴 현인들이 한낱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음은 그들에게 배인 겸손과 진리를 알아보는 혜안을 드러내 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탄생 성당의 구유 제단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은 장소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실제 구유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옮겨졌으므로, 베들레헴의 구유 제단은 기념 제단이다.
지성과 미덕 대신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요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주는 동방 박사들의 행보는 큰 교훈이다. 세속적인 처세술로는 권력을 쥔 헤로데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더 이익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겸손과 혜안으로 진리를 분별했기에 유다인들에 앞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4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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