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123)
“임금님께서는 쳐 죽이려고 칼과 활로 포로들을 사로잡으십니까? 오히려 그들에게 빵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자기 주군에게 돌아가게 하십시오.”(2열왕 6,22)
엘리사 예언자는 국사로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람 사람들과 벌인 싸움에 개입했다. 기원전 9세기에 이스라엘은 인접국가 시리아와 계속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다. 이는 아합 임금 시대부터 벌인 전쟁의 연장선이었다.
열왕기 상권 6장은 이스라엘 임금이 아람군대를 사로잡았지만 엘리사 예언자의 말에 따라 사로잡힌 포로들에게 먹을 것을 준 다음 풀어준 이야기를 전한다. 그 덕분에 아람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접국가와 전쟁,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싸움과 정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도 역시 같은 일이 있었다.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동맹군은 당대의 강대국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 동맹군은 마라톤에서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쳤고, 10년 뒤에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의 함대를 격파했다.
그 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30년 동안 주도권 싸움을 벌였고, 이 싸움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다. 도시국가 아테네는 기원전 454년경 델로스 동맹의 맹주에서 지배권력으로 변신했다. 이로써 거의 모든 가맹국이 동맹자에서 예속자로 전락하고, 동맹에서 이탈을 꾀하는 도시에는 무자비한 보복이 가해졌다. 중립을 지켰던 작은 도시 멜로스 역시 희생자가 됐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직접 지켜본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이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멜로스가 아테네의 과도한 세금을 거부하자, 아테네는 도시를 파괴하고 토지를 빼앗고 성인 남자들을 학살했다. 아테네 군대가 멜로스를 공격하기에 앞서 아테네의 사절과 멜로스의 사절이 벌인 회담을 기록한 것이 ‘멜로스의 대담’이다.
아테네의 사절은 생사기로에 놓인 멜로스의 사절에게 말했다.
“정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양자의 세력이 동등할 때 결정되는 것이요. 강자와 약자 사이에는 강자가 어떻게 큰 몫을 차지하며 약자가 어떻게 작은 양보로 위기를 모면하느냐, 이것이 문제일 뿐이요.”
이에 멜로스 사절이 반박했다.
“당신들에게 이익이라는 것은 곧 상호이익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요.”
아테네 사절이 말했다.
“이 회담의 목적은 우리의 지배권에 이익을 꾀하고 아울러 그것이 당신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요.”
멜로스 사절이 반문했다.
“당신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말씀이요”
그러자 아테네 사절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다오. 왜냐하면 당신들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고 종속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는 당신들을 살육하지 않고 살려둠으로써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요.”(김진경,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참조).
묵상주제
“그리하여 임금은 큰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시게 한 다음, 그들의 주군에게 돌려보냈다. 그러자 아람의 약탈자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오지 않았다”(2열왕 6,23).
[2015년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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