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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아탈야의 유다 통치와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2열왕 11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6 조회수2,950 추천수1

역사서 해설과 묵상 (125)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했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했다”(2열왕 11,17)

 

 

정정(政情)이 불안해 혁명이 잦았던 북왕국과는 달리 남왕국은 다윗의 가문이 계속 나라를 다스렸다. 유일한 예외는 기원전 9세기 아탈야의 통치기간(841-835년)이었다. 

 

아탈야는 북왕국 오므리의 손녀로서 남왕국 아하즈야의 모친이었다. 아하즈야는 기원전 841년 예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탈야는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왕자들(=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만은 그의 고모 여호세바(요람의 공주이자 사제 야호야다의 아내)가 몰래 빼내 죽음을 면했다. 사제 여호야다는 7년 동안 요아스를 몰래 숨겨 키운 뒤, 군부의 도움으로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열왕기 하권 11장은 기원전 835년에 있었던 그런 사건의 경위를 전하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요아스의 등극은 사제 여호야다가 주도한 반정(反正)이 성공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국왕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 시도하는 반정은 이스라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정치를 잘못해 백성이 도탄에 빠지거나, 임금의 통치가 지배층과 갈등을 빚을 때 반정이 일어나곤 했다. 반정은 서얼과 같이 차별을 받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거나 민중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조정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양반 지배층에 의해 일어났다. 

 

조선시대에 반정이 성공한 경우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1506년)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년) 두 번 뿐이다. 반정을 주도하는 세력이 반정의 성공을 위해 군사력을 모았지만, 나라의 군사력과 맞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유는 군대의 지휘권자들이 반정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반정을 주도한 세력은 으레 국왕의 무능과 폭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연산군은 재위 12년 동안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4년)를 일으켜 수많은 선비들을 죽이고, 성균관을 폐하여 오락장소로 만들었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자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파직된 이조참판 성희안이 주동하여 연산군을 폐하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을 임금으로 옹립했으니 그가 곧 중종(中宗)이다. 

 

인조반정은 서인(西人) 일파가 광해군과 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을 임금(인조)으로 옹립한 무력정변이다. 서인들은 광해군이 아우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인륜을 어겼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서인의 최명길, 이귀, 김자점, 김유, 이괄 등이 이를 이유로 무력정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일 년 뒤, 이괄은 일등공신이 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한양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괄의 난은 새로운 임금을 내세운 또 다른 반정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반정에는 늘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반정을 통해 실제로 얻고자 한 것은 권력이었다. 반정의 주도자들은 포악한 임금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는 데 공을 세웠다는 것을 내세워 스스로 공신이 되었다. 실제로 중종은 임금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공신들의 힘에 휘둘려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공신들의 압력에 굴복해 왕비마저 바꿔야 했다. 

 

사제 여호야다는 아탈야를 제거하고 7세의 어린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반정을 계기로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사제귀족을 포함한 예루살렘 귀족들의 세력이 막강해졌다. 이 중앙귀족들은 필시 여러 파당을 형성해 상호 경쟁했음이 틀림없다. 요아스의 암살(2열왕 12,21-22)은 이들 사이에 일어난 권력암투의 결과였을 것이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츠야는 이런 상황에서 임금이 되었다. 아마츠야의 시급한 과제는 중앙귀족들에게 유린된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마츠야 역시 귀족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암투의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2열왕 14,19 참조). 

 

묵상주제 

 

아무리 좋은 명분과 민심으로 성공하여 권력을 잡았더라도 그 권력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열왕기 하권 11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015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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