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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요한 묵시록 개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8 조회수4,874 추천수1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요한 묵시록 개관



성경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도 요한 묵시록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묵시문학 전승 자체가 독자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한 해 요한 묵시록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묵시문학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1. 묵시문학

1) 묵시문학 작품

어떤 것이 묵시문학에 속하는 지에 대해서부터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많고, 또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된 것들도 묵시문학의 특징을 고루 보여주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묵시문학이 그리스도교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신약시대와 그 이후에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안에서 나름대로 발전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정경 안에서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묵시문학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구약성경 안에 있다. 무엇보다 이사야서 안에서 발견되는데 “대묵시록(이사 24-27장)”과 “소묵시록(이사 34-35장)”이 있다. 그 외에도 제2즈카르야(즈카 9-14장)가 있지만 구약에서 온전히 묵시문학에 속하는 책은 다니엘서(기원전 165년경)이다.

신약성경 안에서도 묵시문학은 계속된다. 요한 묵시록을 제외하고도 묵시문학의 흔적과 단락을 볼 수 있는데 “공관복음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종말론적 담화문(마태 24,1-44; 13,1-31; 루카 21,5-36)과 바오로 서간의 여러 단락들(1테살 4,16-17; 2테살 2,1-12 등)이 가장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2) 묵시문학의 기원과 성격

묵시문학은 유배 이후에 예언활동이 사라졌을 무렵 태어났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종교생활에 대해서는 주목할만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고,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종교적으로 심화되고 성숙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본격적인 묵시문학이 탄생한 것은 이런 평화로우면서 성숙한 신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유다교 말살정책을 세우고 박해를 했을 때다.

에피파네스는 성전 가운데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유다인들에게 억지로 절하게 하고, 유다교를 배교하는 표시로 유다인들이 부정한 것으로 여기던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게 하였다(기원전 167-164년경, 2마카 6-7장 참조).

묵시문학은 한편으로는 구약의 모든 자료를 성숙한 종교로서 더욱 심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피파네스의 박해처럼 새로우면서도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을 종교적으로 해석해야만 했던 절박함에서 탄생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묵시문학은 구약의 종교적인 시각을 통해 살아있는 구체적 역사를 조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묵시문학의 역사해석은 이원론적이다. 곧, 역사란 긍정적인 세력과 부정적인 세력이 충돌하는 장이다. 이러한 충돌은 인간적 차원에서 현실화되기 때문에 묵시문학의 관심은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요소를 지닌다.

한편에는 악마적 구성요소가 있는데, 주로 동물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다른 한편에는 묵시록에서 특별히 중요시되는 천사들이 있다. 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부정적인 세력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존재이다. 이런 초월적 존재들의 대립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영원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그 역사도 결국 결말에 이르고, 그 결말에는 긍정적인 세력이 메시아적 존재“(사람의 아들”)의 개입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것이 묵시문학의 종말론적 측면이고, 또 근본적인 면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종말론이 곧 묵시문학은 아니다.

3) 묵시문학의 특징

상징체계 : 이전의 성숙되고 심화된 하느님의 계시를 역사의 유동적 영역과 접목시키려는 시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묵시문학은 상징체계에 의존한다. 상징체계는 이 두 영역을 결합시키는 가장 적합한 도구였는데,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충실히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현실성을 존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차명성 : 지혜문학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묵시문학의 전형적인 문학적 특징 중 하나는 차명성이다. 묵시문학의 저자는 일반적으로 일인칭 주어“(나”)로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는 않고, 그 대신 과거의 유명한 사람(에녹, 에즈라, 바룩, 다니엘, 모세, 엘리야, 이사야, 솔로몬 또는 베드로 등)의 이름을 빌려 쓴다. 저자는 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하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특별히 잘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차명 사용을 통해 작품은 권위를 획득하는데, 이는 문학적 위조가 아니라 세련된 문학적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묵시문학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드러난 메시지의 성숙을 전제하면서, 그 메시지를 최종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과거의 유명한 인물들은 그 메시지를 설명하면서 현재에 적용시키기 위한 보증이었던 것이다.

문체 : 분명히 밝히기는 어려운 문학적 특징이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문체이다. 묵시문학의 문체는 독자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다. 곧 특정한 긴장과 리듬을 통해 독자를 매료시키면서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즉시 끌고 들어간다.


2. 요한묵시록

1) 문학유형


요한 묵시록은 분명히 묵시문학의 유형 안에 들어간다. 이는 그 명칭뿐 아니라 문학적 형태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신약의 묵시문학의 틀 안에 위치시키는 그 순간, 묵시록은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구약의 예언과 묵시문학의 요소가 묵시록 안에 공존한다.

저자는 묵시록을 쓰면서도 자신을 예언자로 느끼고 있다(10,11 참조). 서문에서부터 자신의 작품을 “계시”(1,1)와 “예언의 말씀”(1,3)이라고 지칭하는데, 동일한 표현이 결문(22,7.10.18.19 참조)에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묵시록은 묵시문학과 예언이 새롭게 결합된 모습이다.

묵시록의 독창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면서(1,4) “은총과 평화”를 기원한다. 이 두 요소는 모든 사도의 편지에 공통된다.

묵시록에서 편지나 서간문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과 편지의 문학형식은 묵시문학의 그것에 비해 표면적이라는 사실은 묵시록이 분명히 묵시문학에 속하면서도 또 다른 고유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묵시록의 서문(1,3)과 결문(22,7ㄴ)은 한 사람의 독자와 많은 청중의 관계를 암시한다.

이 밖에도 기사를 중단하면서 청중들에게 직접 향하는 담화(13,9-10.18)와 최종 인사(22,21) 등은 묵시록이 교회들에 보내져서 공적으로 낭독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묵시록이 온전히 계시가 되는 곳은 살아있는 전례 공동체 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저자

요한 묵시록의 저자 문제는 오래되고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으며 아직도 결정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2세기에는 한목소리로 묵시록을 사도 요한의 작품으로 간주하였다(이레네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테르툴리아누스 등). 물론 이와 반대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가이우스나 파피아스(묵시록을 사도가 아닌 장로 요한의 것으로 간주)를 들 수 있다.

3세기에는 사도 요한의 것으로 보는 의견이 계속되면서도(오리게네스, 히폴리투스, 치프리아노) 다른 한편으로는 묵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만 네 번째 복음서나 요한의 편지들과는 구별한다(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사실 묵시록의 필치가 독창적이라 문학적 특성으로 신약성경 안에서 그 계보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네 번째 복음서와 요한의 서간들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양을 치는 상징, 생명의 물, 말씀이신 그리스도(묵시 19,13; 요한 1,1.14),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묵시록에 28번 나옴; 요한 1,29.36) 등과 같은 공통 주제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유사성과 일치는 동시에 그것을 제한하고 상대화하는 부정적인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린양”은 공통의 그리스도론적 주제이지만 용어가 서로 다르며 - 네 번째 복음서에서는 ‘암노스’, 묵시록에서는 ‘아르니온’ - 그 내용과 전개도 다르다. 따라서 언어적 · 신학적 관점에서 두 저자를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이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당신 종 요한에게”, 1,1) 일인칭 담화문이 항구하게 나오는 것은 묵시문학의 전형적인 차명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묵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과는 다른 사람이다. 요한은 아니지만, 그를 찬양하는 사람, 또는 그의 제자일 수 있다.

3) 저술시기

저자가 사도 요한일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묵시록의 저술시기는 빨라도 1세기 말이다. 이레네오의 증언이 이를 증명하는데, 그는 묵시록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말경에 저술되었다고 증언한다.

* 이성근 사바 - 신부. 1991년 사제로 수품, 교황청 성서대학을 졸업했다.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이다.

[경향잡지, 2015년 1월호, 이성근 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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