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예로니모 예로니모는 348년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정식 이름은 에우세비우스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다. 영어는 제롬(Jerome)이다. 서방교회 4대 교부 중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예로니모 · 암브로시오 · 아우구스티노 ·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을 흔히 4대 교부라 한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의 완성으로 유명해졌다. 축일은 그가 선종한 9월 30일이다. 부유하고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로마 유학으로 라틴어와 고전문학을 익혔다. 당시 로마는 기독교가 공인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교도가 득세했다. 예로니모 역시 그런 분위기에 젖었다. 그러다 중병으로 죽음을 체험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돌아왔다. 26세 때인 373년 예루살렘을 순례한 뒤 성경연구를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한때 광야로 나가 은수자 생활도 했다. 379년에 안티오키아에서 사제가 되었다. 31세였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주석과 문헌 연구에 몰두했으며 이단을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리게네스의 성경주석 방법에 심취했으며 그의 서적과 에우세비오의 교회사를 이 무렵 희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다. 예로니모의 뛰어난 지식은 널리 알려졌고 교황 다마소 1세의 비서가 된다. 이후 교황은 새로운 라틴어 성경을 주문한다. 라틴어 성경이 있었지만 공인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니모가 성경 번역에 매달릴 때 다마소 교황은 선종한다. 여러 사정으로 로마를 떠난 예로니모는 386년 베들레헴에 정착했고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로마 귀족이었던 성녀 바울라는 수도원 건립에 재정적 뒷받침을 했다. 420년 9월 30일 72세로 선종한다. 시신은 수도원에 모셨으나 13세기 로마로 이장되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라틴 교부 중 가장 박식했고 동시대인 가운데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가장 큰 업적은 불가타로 알려진 라틴어 성경을 완성한 일이다. 신약은 희랍어 원문에서 구약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했다. 동방교회는 공용어가 희랍어였다. 니체아 공의회도 희랍어로 진행되었다. 전례 용어도 희랍어였고 희랍어로 된 70인역 성경을 사용했다. 하지만 서방교회 즉 로마교회는 라틴어가 공용어였다. 그래서 원문에 충실한 라틴어 성경을 오랫동안 원했던 것이다. 불가타 성경이 환영받았던 이유다. [2015년 2월 8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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