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2)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20)
신명기 법전에 기록된 구원과 멸망의 역사
- 신명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신명기 법전이다. 사진은 신명기 법전을 기록한 토라 두루마리.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지난 주의 주제였습니다. 신명기는 그 한 분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겁니다. 신명기가 계명을 말하고 법전을 말한다면, 그것은 모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만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은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니(7장 참조), 이스라엘은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12-26장의 신명기 법전입니다. 탈출기의 계약 법전, 레위기의 성결 법전에 이어 오경에서 세 번째로 나오는 법전입니다. 전체적인 짜임새 역시 다른 법전들과 비슷합니다. 신명기 전체의 틀을 본다면, 십계명이나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 등 아주 근본적인 내용들은 5-11장에서 이미 언급됩니다. 12-26장은 더 개별적인 문제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개별 규정들 다음으로는 27-28장에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다.
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만을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신명기 법전의 첫머리에는 제사 장소에 관한 규정이 나오는데(12장), 우상 숭배만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도 예루살렘에서만 드리게 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교통도 불편하던 시대에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신명기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지역에 성전이 있게 되면 마치 서로 다른 신들을 섬기는 듯이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이 갈리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우려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법전에 흩어져 있는 사회적 계명들에서는 “고아, 과부, 이방인”을 보호하라고 명합니다. 그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입니다. “동족”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동족”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형제”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서로 형제들이므로, 땅이 없거나 가장이 없어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고아, 과부, 이방인”에 대해 함께 책임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점은 성경의 법전을 읽을 때에 주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인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고아, 과부, 이방인”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 역시 하느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돌보시는 분이 내가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나도 그분의 뜻에 따라 그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는 법전 본문 다음에는 축복과 저주가 뒤따릅니다. 주의해서 볼 부분입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법전들에는 법률 조항들 다음에 축복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법률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온갖 종류의 축복이 약속되고, 법률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많은 저주들이 뒤따릅니다. 주변 다른 민족들의 경우 신들도 많다 보니 저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법전에서 축복과 저주의 내용은 땅에 집중됩니다. 이스라엘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여 그분의 율법을 지킨다면 하느님께서 주실 그 땅에서 오래오래 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고 나서 배가 불러 하느님을 잊는다면,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땅을 주신 그분을 잊어버린다면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로 너희를 흩으실 것”(28,64)이며 “이집트로 도로 데려가실 것”(28,68)입니다. 이집트로 도로 데려가신다는 것은 이집트 탈출을 취소함을 뜻합니다.
법전만이 아니라 신명기 전체에서 땅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땅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가 강도 높게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신명기의 형성 시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 안에서 법전 부분이 비교적 오래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전체가 완성된 것은 유배 후였고, 물론 법전에도 그 시기에 첨가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땅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 신명기의 본문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신명기의 마지막 편집자는 유배를 겪었고, 이스라엘이 그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땅을 잃어버린 이유를 물었습니다(신명 29,23 참조). 그리고 그가 찾은 대답이,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서는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경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29,25-28 참조).
그런데 신명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쫓겨난 후에라도, 유배 간 그곳에서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시 모아들이시며 번성하게 해주시리라고 말합니다. 이미 땅을 잃어버린 신명기의 독자에게 이러한 말씀은, 좌절하지 말고 다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가 봅시다. 신명기에 따르면, 약속된 땅에 들어간 다음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땅을 잃어버린 다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을 잃어버리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이신 하느님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멸망은 구원 역사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