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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17: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1사무 8,5)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2 조회수3,512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7)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1사무 8,5)


임금, 하느님 뜻 따라 백성 다스려야



다윗의 도유, 14세기 작.


판관기의 마지막 말은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판관 21,25)입니다. 임금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사무엘기의 앞부분에는 왕정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충돌합니다.

왕정에 찬성하는 입장이 더 간단하니 그쪽부터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위에 인용한 판관기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타나듯이 임금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판관기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혼란상과 끊임없이 외적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판관 시대의 상황을 생각해도 임금은 현실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지금까지 위험이 닥칠 때마다 하느님께서 판관을 세우시어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 해도, 필리스티아를 비롯한 주변의 민족들은 언제 다시 침입할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 판관을 보내주실지 어떻게 압니까? 판관은 그때 그때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인물들이어서, 항구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임금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적어도 임금이 없을 때는 그렇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제 침입을 당하더라도 안정된 국가 조직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명기계 역사서에서는 왕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 옵니다. 그 시작은 판관기에서부터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가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판관 8,22) 다스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왕정에 반대합니다. 그도 그의 아들도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판관 8,23). 이것이 기드온이 임금이 되기를 거부한 이유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왕정을 반대하는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임금 자리를 차지하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기에서도 같은 이해가 나타납니다. 백성이 임금을 요구할 때 사무엘이 언짢아하자,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 판관이냐 임금이냐, 그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느님을 버리고 임금에게 의지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기 상권 12장에 실린 사무엘의 고별사에서도 사무엘은, 임금을 요구한 것은 하느님을 거슬러 큰 악을 저지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사무엘은 왕정 제도의 폐해를 백성들에게 알려 줍니다. 임금이 군사를 징발하고 부역을 시키며 세금을 거두고, 백성은 임금의 종이 되고 말리라고 일러 줍니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의견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판관기와 사무엘기를 포함한 신명기계 역사서들은 한 번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의 편집을 거쳤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왕정 시대에는 친왕정적인 본문들이 형성되었고 왕정이 무너진 후에 반왕정적인 본문들이 덧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이 책들의 편집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고 학파들도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는 편집층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눈 앞에 있는 완성된 성경 본문들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양편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나서, 이들을 어떻게 종합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판관이면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수립하는 역할을 했던 사무엘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 두 입장을 묶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무엘 자신은 왕정을 원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울과 다윗을 기름부어 임금으로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도 이스라엘도, 왕정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에 왕정이 수립된 가장 주된 요인은 외적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주변 민족들에게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임금이 필요하고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서 그들과 비슷한 단계에 있었다면 왕정 수립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임금은 절대 군주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임금은 그 하느님 아래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신데 어떻게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며 임금이 하느님 아래에 있을 수 있을까요? 신명기와 신명기계 역사서를 모두 읽고 나면 그 답이 명확하게 나옵니다.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그리고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입니다.

신명기 17장 14-20절에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왕정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임금은 군마를 많이 늘리거나 아내를 늘리거나 금과 은을 너무 많이 모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임금이 해야 한다고 명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평생 율법을 익히면서 “계명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신명 17,20)는 것입니다. 임금이 그 말을 잘 들으면 좋지요! 그것이 안 될 때에 일어나는 것이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임금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왕정에 관한 논란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곧 국가에 대한, 정치 체제에 대한 논란입니다. 왕정이나 국가, 그 자체가 악하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하느님의 뜻 아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12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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