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특강] 하느님의 복음
복음의 힘과 하느님의 진노
로마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로마서 통독 안내에 도움이 되는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로마서에는 중요한 바오로의 신학 주제들이 있는데 처음부터 그런 신학 주제의 의미를 탐구하기보다는 로마서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가는 것이 처음 로마서를 읽을 때에는 로마서를 큰 항목별로 구분하여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도표에서 보듯이 로마 1-4; 5-8; 9-11과 12-15장으로 나누어 읽고 이 안에서도 더 세부적인 항목들의 주제가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떻게 다른 항목들과 연결되는지를 보면서 로마서 전체의 논리 전개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읽으시면서 항상 로마서 전체의 구조를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로마서의 구성>
? 소개 1,1-7
? 감사 1,8-15
? 로마서의 대주제 : 1,16-17
? 대주제 증명
(A) 1,18-4,25 오직 신앙으로 의화되는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B) 5-8 세례받은 이의 새로운 삶과 희망
(C) 9-11 이스라엘과 이방인: 이스라엘의 미래
? 권고 12,1-15,13
? 에필로그 15,14-21
? 소식과 안부 인사 15,22-33; 16,1-27
로마서 입문(1,1-17)
로마서 입문 단락은 바오로의 모든 서간들 가운데에서 가장 길고 가장 장엄합니다. 다른 서간들처럼 발신자, 수신자, 인사가 나오지만 로마서만의 독창성도 있는데, 소개(1,1-7), 감사(1,8-15), 주제(1,16-17)로 구분됩니다.
바오로는 로마서에서는 다른 서간과는 달리 협력자를 공동 발신인으로 함께 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 ‘바오로’만을 이 서간 집필자로 소개합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의 복음’임을 처음부터 밝히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오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 ‘복음을 위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세 개의 칭호로 소개합니다(1,1). ‘종’이 그리스도에 대한 바오로의 자세를 가리킨다면, ‘사도’는 사람들에 대한 바오로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인간적인 결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이라는 로마서의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느님 앞에서 로마신자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신앙에 대해 감사드리고, 자신의 로마 여행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분 아드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나는 끊임없이 여러분 생각을 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든 내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빌고 있습니다.”(로마 1,9-10). 바오로가 넓은 로마 제국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들을 창립하기 위해 여행을 많이 했지만 항상 자신의 선교 계획은 하느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견된 사도로서 파견하신 분,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고 선교 여행을 계획할 때는 항상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길을 열어 주시면 떠나고 길이 막히면 그 자리에 머뭅니다. 그가 제일 먼저 쓴 테살로니카 전서에서도 바오로의 같은 태도(참조. 1테살 3,11)를 볼 수 있는데 생애 마지막 무렵에 쓴 로마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가 로마에 가려는 목적은 ‘하느님 아드님의 복음’, 하느님 아들에 대한 기쁜 소식이며 그 아드님이 인류에게 가져다주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신자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의 마음 안에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형성한 로마 신자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평생 전파해 온 ‘그의 복음’의 참된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여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자신도 힘을 얻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신자들이 하느님의 복음,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으며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1,4)으로 책봉되신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초대합니다. 복음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소개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이시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분이심을 마음으로 느끼고 입으로 고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주제(1,16-17)
1,8-15의 감사대목에 이어서 1,16-17에서는 로마서 전체의 주제를 소개합니다. 바오로는 로마에 전하려는 복음의 의미와 핵심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로마서의 핵심 용어들이 이 구절에 나옵니다. “복음, 하느님의 힘, 구원, 믿음, 믿다, 계시하다, 의로움, 살다.”
우리는 지금 바오로의 용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들을 보고 있습니다. 용어들이 모두 중요하고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있어 길게 설명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메시지는 이렇게 축소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복음(참조. 1절),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하는데(참조. 2-4절)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께 개방하는 모든 인간에게 도달한다.” 바오로는 이 복음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의 시대에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 무엇보다도 십자가 위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은 영광으로 둘러싸인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다인들에게는 스캔들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들의 존엄한 지성으로 보기에는 십자가 죽음은 아무 가치도 없고 어리석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에게 복음은 ‘하느님의 힘’이며 코린토 후서 13,4에서 증언하듯이 생명의 선포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 계십니다.” 오로지 파스카 신비를 체험하고 그것을 살아내는 삶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이 복음의 수신자는 먼저 유다인들이고 그다음이 그리스인들(=이방인들)인데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복음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 그분이 인간에게 개입하시는 방식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모든 좋은 것이 흘러나오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됩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토대는 인간이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하느님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주시는 하느님 사랑, 그 사랑을 알고 받아들이며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바오로는 이런 ‘하느님의 복음’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력이 있는 ‘힘’이라고 소개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듣고 공감하거나 동의하는 차원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고,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하며 새 인간이 되게 하는 ‘힘’입니다.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런 복음의 힘을 로마 신자들도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믿음’이라는 두 개의 용어도 나오는데 로마서의 첫 대목인 1-4장의 핵심적인 용어이기도 합니다. 사실 바오로가 1,16-17절에서 선포하는 로마서의 주제는 앞으로 이어지는 11개의 장(1,18-11,36)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될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진노(1,18-3,20)
1,16-17에서 장엄하게 복음을 선포한 후에 바오로는 갑자기 1,18에서 어조를 바꾸어 ‘하느님의 진노’에 대해 말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1,18)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진노라는 주제는 3,20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독자들이 로마서가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서간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로마서 첫머리에 해당하는 1,18-3,20을 읽으면서부터입니다. 독자는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왜 바오로는 1,16-17에서 복음을 선포한 다음에 독자가 기대하는 하느님 자비가 아니라 하느님 진노에 대해 길게 다루면서 로마서를 시작하는 것일까? 이 항목에 나오는 내용은 평소에 바오로가 가르치는 내용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1,18-3,20의 내용은 바오로가 당대 유다인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던 원리를 염두에 두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오로는 당대 사람들의 기대와 사고를 염두에 두고 로마서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지요.
[평신도, 2015년 봄호(VOL.47), 임숙희 레지나(엔아르케 성경삶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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