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묵시록의 상징체계 (3)
인간학적 상징 묵시록의 저자가 지닌, 인간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은 인간의 삶과 그 다양한 형태에까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묵시록에서 저자는 ‘생명’이라는 명사를 17번, ‘살다’라는 동사를 13번 사용하고 있다.
먼저 개별적인 인간은 물리적인 육체뿐만 아니라 생명력과 생명의 결정적인 요소인 피를 지니고 있으며, 기아와 갈증을 겪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묵시록에서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존재이며,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저자는 인간의 보이는 모습, 곧 서거나 앉아있는 자세와 이마, 얼굴, 머리카락, 손, 발, 목소리 등과 같은 육체의 부분에 대한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또한 마찬가지 의미로 의복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옷에 관련된 단어를 24번 사용), 금이나 보석같이 인간이 좋아하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역사적 시각 안에서 인간은 무엇보다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공동생활을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공동생활은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데, 남자와 여자, 사랑, 결혼, 임신 그리고 출산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공동생활은 특별히 도시 안에서 반복되어 표현되고 있는데, 도시는 인간 역사의 종착점(천상 예루살렘)이 되고 있으며, 더 확대되어 국가구조 안에서 표현된다(나라, 임금들).
공동생활의 환경 안에 있는 인간의 활동에도 관심을 갖는 저자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노동(포도 수확, 추수, 목축 등)과 상행위나 교역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 안에서 인간의 상호관계가 긴장과 폭력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전쟁을 벌이고, 이기고 지며,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런 가운데 고통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인간의 울부짖음, 억압 그리고 눈물에 대해 묘사한다.
구약의 환경에서 성숙한 저자의 눈에는, 인간의 활동은 하느님과 연결됨으로써 완성된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선 존재이며, 하느님께 올리는 경배행위와 전례가 인간학적 틀에 포함된다.
이상이 대략 살펴본 묵시록의 인간학적 틀이다. 이런 틀은 틀림없이 현실적인 차원을 지닌다. 예를 들어,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18,23),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한 묘사(18,22) 그리고 인간의 신체부위에 대한 묘사(1,14-16)에서도 나타난다.
그 사람을 규정하는 요소 : 옷
이 인간학적 틀에도 의미가 변화되는 상징적인 부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상징으로는 옷(히마티온)이 있다. 긴 옷을 뜻하는 이 단어는 묵시록에서 주로 복수로 사용되며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3,4)이나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은 사람”(16,15)에게 사용된다(19,13.16 참조).
이와 함께 의미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스톨레(stol?) 또한 발견된다. 종말론적 구원을 위해 선택받은 백성을 묘사할 때에, 그들의 의복을 나타낸다(7,9.13.14 참조). 또 박해나 환난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켜낸 이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옷을 빤다’는 이미지에서도 이 용어를 찾을 수 있다(22,14 참조). 이 두 단어의 의미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뿐 아니라 묵시록은 ‘옷’을 나타내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입는다’는 동사(페리발로)를 통해 같은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옷의 상징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흰옷”으로서, 이미 현실에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을 묘사할 때 쓰인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옷은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규정해 주는 요소이다. 또한 옷은 보이는 것이고 겉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저자는 옷의 형태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을 상호성의 관계로 묶고 있다. 옷이란 다른 사람이 바라보도록, 그리고 서로 관계를 맺도록 초청하는 역할을 한다.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상기 : 여인
묵시록의 인간학적 틀에서 특히 ‘여인’이 강조되고 있는데, 16번 사용된 ‘여인’이라는 단어는 그 중 3번만이 현실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12장에 나오는 ‘여인’을 통해, 사랑하고, 고통받고, 자신을 증여하고, 어머니가 되는 여인의 그 능력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응답하면서, 사막에서 어려움에 놓이거나 자신의 역사적 고난의 순간에서도 종말론적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애쓰는 존재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의미 또한 찾을 수 있다. 대탕녀 이야기(17,3-18)에서 아름다움은 몰염치한 사치와 선동적인 매력이 되며, 모성은 근본적으로 역전된다. 여인은 “땅의 탕녀들과 역겨운 것들의 어미”(17,5)로 소개된다.
저자는 여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취하고 또 그것을 뒤집음으로써 바빌론의 부정적인 성격을 표현한다. 여인은 모든 문학에서 사랑과 연관되어 있으며, 묵시록 또한 사랑을 긍정적인 의미로 다루고 있다.
묵시록에 나오는 결혼은 어린양의 결혼이다. 어린양의 혼인날이 다가왔음을 축하하고(19,7 참조), 초대받는 이들이 복되다고 선포된다(19,9 참조).
저자는 구약에서 취한 요소들을 변형하여 부부간 사랑의 특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닌 동등하고 상호적인 사랑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사랑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점진적 사랑으로 발전시킨다.
이 사랑의 동등성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완전히 실현될 것이지만 교회는 이미 현재부터 그리스도의 완전한 현존을 기대하는 신부가 될 줄 아는 존재이다.
인간 공동생활의 장 : 도시
인간의 공동생활의 가장 자연스러운 장은 도시이다. 도시 또한 상징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대탕녀의 상징적인 모습이 큰 도성이라 일컫는 로마로 구체화되고(17,18 참조), 예루살렘이 이집트, 소돔 그리고 로마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11,8 참조). 예루살렘이나 로마 모두 지정학적으로 구체적인 도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작되나 의미의 변화를 겪으며 결국 상징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도시(폴리스)는 예루살렘을 지칭하는데, 21장에 소개되는 예루살렘은 ‘새로운’,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부처럼 단장한’ 도시이며(21,2 참조) 궁극적으로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21,9)가 되고 있다.
저자에게 인간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이것이 구약의 정신이며 우리를 전례로 인도한다. 묵시록의 전례거행 장소는 하늘이며, 구약의 전례적 요소들이 거의 다 발견되지만 성전이나 시나고가(회당)의 전례가 아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의 상징이다. 묵시록의 전례 장면은 천상 차원에서 거행되지만 초월성 안에 머무르지 않고 땅과 분명한 연결고리를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에 경배받으시고(4,11 참조), 하늘과 땅 위,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어린양을 찬양하고(5,13 참조), 천사는 향로의 내용물을 땅 위에 쏟는다(8.5 참조). 땅과의 연결고리는 역사와 직접 관련된 지상 차원에도 신성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색깔의 상징
묵시록의 저자는 색깔에 대한 감수성도 잘 보여준다. 색깔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넘어 이지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질적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는 다니 7,9을 취해서 그리스도의 머리와 머리카락이 양털이나 눈같이 희다고 소개한다(1,14 참조). 묵시록에서 흰색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한 신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복음서들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되고 있는데, 변모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흰색이며, 그 흰색은 부활의 특징적 표지이다(마태 28,3; 마르 16,5; 요한 20,12 참조). 묵시록에서도 흰색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고유한 초월성을 표현한다. 따라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상황에 동참하는 것이다.
“흰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인 힘을 표현하고,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서 흰말을 탄”(19,14) 하늘의 군대는 그리스도 부활의 결정적인 승리의 힘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앉은 “흰 구름”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상징한다.
검은색의 의미는 그 맥락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힘을 표시한다.
초록색은 풀의 색깔이라는 점에서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삶의 덧없음이나 죽음을 의미한다.
붉은색은 피와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잔인함을 표현한다.
색깔의 상징은 그 색깔이 지니는 본질적인 의미, 곧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일반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우리의 인상이나 감수성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알려주며, 인지시킨다.
* 이성근 사바 신부 - 1991년 사제로 수품, 교황청 성서대학을 졸업했다.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이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이성근 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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