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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성경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저희] 아버지라는 호칭의 의미 - 마태오 복음서의 주님의 기도 해설 (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2 조회수4,542 추천수1

[신약성경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저희] 아버지!”라는 호칭의 의미


마태오 복음서의 ‘주님의 기도’ 해설 2



이번 호에는 ‘주님의 기도’(6,9-13) 가운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에만 집중하겠다. 이 호칭은, 하인츠 쉬르만의 표현 (「주님의 기도」, 조규만 / 조규홍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3년, 25쪽 참조.)을 빌리자면, ‘주님의 기도’ 전체의 ‘혼’일뿐 아니라, 각 청원의 ‘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주님의 기도’ 해설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주님의 기도’의 구성

마태오 복음서의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저희] 아버지”라는 호칭과 하느님과 관련된 세 개의 ‘청원’, 그리고 인간의 지상 삶을 위한 네 개의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 인간적 필요성을 위한 청원기도에 우선한다는 사실은, ‘주님의 기도’의 해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의 의미

마태오 복음서에서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시작한다. 반면에 루카 복음서에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호칭이 간단히 “아버지!”라고 되어 있다. 이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소속되어 있던 신앙 공동체가 주로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해가 된다.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루카 복음사가의 공동체에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없었을지 모르지만,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을 아무 수식어 없이 그저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신뢰와 사랑으로 가득 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라는 말을 덧붙여 사용해야 했던 것 같다. 곧 “아버지”를 수식하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수식어는 우리 기도의 대상인 하느님이 ‘사랑의 아버지!’이시면서 동시에 ‘창조주’이심을 일깨워주며, 창조주 하느님을 피조물의 하나인 지상의 일반 ‘아버지들’과 같은 차원에 놓으려는 유혹을 뿌리치게 한다. 그리고 이 수식어는 우리 신앙인이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에 파묻혀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해” 들어 올리라고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다른 한편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이 지닌 하느님의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셔서 인간들의 지상 삶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시고,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심판자로 활동하시는 분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포함하여 신약성경이 근본적으로 증언하는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보내신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마태 1,23; 28,20 참조).

성경이 증언하는 하느님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시는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이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상에 있는’ 이웃 인간들과 관계가 올바르지 않고서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이다(예컨대, ‘참행복’에 관한 마태 5,3-12;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마태 22,34-40). 사순시기는 바로 이 관계를 바로잡으려고 온 교회가 함께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라는 호칭의 의미

그런데 신약성경을 전반적으로 보면,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이 “아버지!”라는 호칭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실 때 직접 사용하셨을 호칭인 아람어 ‘압바’를 번역한 말일 것이다. 이 아람어 호칭 ‘압바[아빠]’는 권위 있는 학자들에 따르면, 본디 가정 안에서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했던 것으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다. 이 호칭이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어린아이들만 사용한 것은 아니며, 장성한 자녀들도 사용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존경하는 어른들에게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호칭을 하느님께 적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본디 가정 안에서 사용되던 이 호칭을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감히 전능하신 하느님께 사용하셨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이 갖고 있던 일반적 종교심에서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구약시대 후기에 ‘하느님의 초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보면 더욱더 놀랍다.2)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압바[아빠]”라고 부르신 것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는 신약성경의 몇 곳에서 이 아람어 호칭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지 않고 아람어로 그대로 보존해서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예컨대, 마르 14,36).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구속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는 자격을 얻어 하느님을 감히3)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감격해하는 듯한 어조로 표현한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압바]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갈라 4,6 참조).

이 구절들에 나오는 “아빠, 아버지”라는 외침은 이런 호칭을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전례 때에 사용했다는 것을 암시한다(1요한 3,1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은 저하늘 높은 곳에 좌정해 계시면서 죄인들을 어떻게든지 찾아내어 단죄하고 벌을 내리시려고 하시는 무섭기만한 하느님이 아니라,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성령을 통해’ 감히 “압바![아빠] 아버지!”라고 신뢰와 애정을 갖고 부를 수 있는 ‘가까우신 하느님’이시다.


“우리”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

이 의미에 대해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예컨대, 마태오가 속해 있는 교회)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그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는 하느님은 어느 특정 그룹, 예컨대 ‘유다인들’, 또는 ‘부유한 이들’, 또는 ‘남성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가난한 이들’도, ‘여성들’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갈라 3,28; 1코린 12,13; 에페 2,19; 콜로 3,11 참조).

이와 관련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좋은 말을 하였다. “이 말[‘우리’]은 우리 각자가 혼자 떨어져 닫혀 지내지 말고 하느님의 다른 자녀들과 어울리면서 일치를 이룰 것을 요구한다”(「나자렛 예수 1」, 박상래 옮김, 바오로딸, 2012년, 219쪽). 따라서 이웃 형제자매의 슬픔과 고통을 모른 체하며 자기 욕심만 챙기며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해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리하며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의 의미는, 마치 혈육의 정으로 이어진 부모와 자식의 사랑 관계에서, 곤경 중에 있는 자녀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향하여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신앙인도 하느님을 향하여 진정한 사랑과 신뢰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미 이런 부름을 통해 우리 기도의 절반 이상이 표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참된 기도를 위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구체적으로 드릴 이러저러한 청원기도들의 내용보다도, 하느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가지는 것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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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가지 예 : 마태오 복음서에 자주(13번) 나오는 “하늘에 계신 [나의, 너희,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 마르 11,25; 14,36“(아빠! 아버지!”), 루카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 요한 17장의 ‘예수님의 기도.’

2) 물론 구약성경에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표상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예컨대, 호세 11,1-4; 탈출 4,22; 신명 14,1; 2사무 7,14; 이사 1,2; 49,15; 예레 31,20-21; 집회 23,1; 51,10. 더 나아가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으로는 이사 63,16; 64,8; 토빗 13,4이 있다.

3) 이 점이 영성체 예식의 시작 부분에서 주님의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례사제가 하는 다음 경문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교수로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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