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포도나무
‘하느님의 맏아들’ 상징하는 이스라엘 대표적 과실수
- 예수님이 포도주로 첫 기적을 행하신 바를 기념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기념 성당.
이스라엘의 성지들을 순례하다 보면, 포도나무도 자주 보고 포도주 먹을 일도 많다. 과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과실수가 맞는 듯. 가나안의 ‘일곱 특산물’에 속하는 열매답게(신명 8,8), 북쪽 골란 고원부터 남쪽 유다 광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포도원이 보인다. 특히 갈릴래아 지방 카나에는 예수님이 포도주로 첫 기적을 행하셨다는(요한 2,1-11) ‘혼인 잔치 기념 성당’이 있다. 그곳에서 부부들은 으레 혼인 갱신 예식을 하고, 저녁에는 포도주로 기념 파티를 한다. 고대에는 혼인 잔치를 이레 동안 했다며(창세 29,27 판관 14,17), 일주일 내내 포도주를 쏘는 부부들도 있다. 또 성지에서 영명 축일을 맞았다고, 순례가 행복하다고, 이래저래 포도주를 나눈다. 이쯤 되면,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순례의 기쁨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포도는,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가 최초로 경작한 작물이었다(창세 9,20). 그러니 민족들 가운데 ‘하느님의 맏아들’이(탈출 4,22) 된 이스라엘에게 상징적인 나무다. 포도나무가 이스라엘의 상징인 만큼, 하느님은 포도원 주인으로 묘사된다(이사 5,1-7 예레 2,21). 시편은(80,9-10) 이집트 탈출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포도나무를 뽑아 와 가나안에 심으신 것이라고. 호세아는(9,10),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들이 ‘광야의 포도송이’ 같았다고 비유한다. 광야의 포도송이답게, 지금도 유다 광야에는 포도원이 많다.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워 보이지만, ‘시련 속에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건조하고 척박한 광야에서 고생한 포도들이 양질의 포도주를 생산해낸다고 한다. 포도는 그냥도 먹고 건포도로 말리고(2사무 25,18 등), 열매즙을 끓여 꿀로도 만들어 먹었다. 모세가 가나안으로 정탐대를 파견했을 때, 헤브론 근처에서 따온 포도송이는 두 사람이 막대기에 둘러메어야 할 정도로 컸다(민수 13,22-23).
하지만 딱딱하고 시큼한 들포도로 변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래서 들포도는 이스라엘을 꾸짖는 심판 신탁에 자주 나온다(이사 5,4 예레 2,21등). 에제키엘은(15장) 한술 더 떠서, 예루살렘 포도나무는 들포도로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쓸모없는 나무였다고 선포한다. 곧, 초창기부터 반역해온 반항의 집안이기에(에제 2,3 12,2 등), 예루살렘 포도나무는 땔감처럼 던져질 운명이다(이것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유다 침공을 암시한다). 이 포도나무 비유가 신약까지 이어져, 요한복음에 반영되었다. 다만, 요한복음은(15,6)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한다. 그래서 그 나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가지가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가지들을 모아 불에 태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포도나무를 가꾸신 하느님이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 15,8).
- 검붉은 포도를 뜻하는 ‘소렉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삼손의 연인 들릴라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포도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포도주다. 고대 가나안산 포도주는 이집트로 수출할 정도였다. 제사 때 사용하는 제주를(민수 15,1 등) 포함해서, 성경에 언급된 술(창세 9,24 등)은 대부분 포도주다. 포도주는, 예부터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내리신 복으로 찬양 받았다(신명 7,13). 시편도(104,15), ‘하느님이 인간에게 와인을 허락하시어 마음을 즐겁게 해 주신다’고 노래한다. 그러니 포도 수확철은 항상 흥겨움과 기쁨이 넘치는 때였다(판관 9,27 참조). 어린 시절, 김밥 싸시는 어머니 곁에 앉아 꼭다리를 얻어먹으며 소풍을 미리 즐거워한 것처럼, 이들도 두고두고 마실 포도주를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성경에는 포도에 얽힌 지명들이 많다. ‘벳 케렘’(예레 6,1)은 ‘포도원의 동네’라는 뜻이다. 삼손의 연인 들릴라가 살았던 ‘소렉’ 골짜기는 ‘검붉은 포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에 지명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자 요한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에인 케렘’은 ‘포도원의 샘’이라는 뜻이다.
포도주는 마음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치유 효과도 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는 강도 당한 사람을 ‘포도주’와 ‘올리브 유’로 치유한 뒤, 여인숙으로 옮겼다(루카 10,34).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위장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고했다(1티모 5,23). 그러나 과음에 대한 경고도 많다. 술에 취하면 방탕이 나오기 때문이다(에페 5,18). 그러므로 방탕에 빠지지 않고 적당하게 포도주를 즐기는 삶은 하느님의 축복인 듯하다. 그러니 과연 ‘포도주는 병에 담긴 시’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가? * 김명숙(소피아)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3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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