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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26: 이사야와 이사야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5 조회수5,739 추천수2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6) 이사야와 이사야서


두 차례에 걸친 개정 증보판 이사야서



-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두루마리


아직 기원전 8세기이지만, 이제는 남왕국 유다로 갑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예언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서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일단 분량이 많아서, 건너뛰고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신학적으로도 매우 비중 있는 책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어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고찰할 때에도 중요한 책이 됩니다.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 나오는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는 말씀도 이사야서의 인용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좀 딱딱하더라도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이사야서를 모두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18세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사야서 1-66장 전체가 이사야라는 이름의 한 예언자가 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1,1)라는 머리글이 글자 그대로 이 책 전체에 적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40장 이하에서는 바빌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적어도 두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시대에 쓴 글들이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제1이사야(1-39장),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를(56-66장) 나누는 이론이 형성되었습니다.

20세기 초까지 교회는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모세오경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사야서를, 적어도 그 상당 부분을 이사야가 쓰지 않았다고 하면 책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940년대 이후로는 적어도 세 부분을 나누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의 「성경」에도 1장 첫머리에 “이사야 예언서 제1부”, 40장을 시작할 때 “이사야 예언서 제2부”, 56장 앞에는 “이사야 예언서 제3부”라고 나와 있을 만큼 이 구분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세 부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입니다. 이사 1-39장은 주로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시리아의 위협이 크게 부각되며 예언자 이사야가 직접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736~734년의 시리아-에프라임 전쟁과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이 중요한 사건들로 나타납니다(기원전 8세기). 그러나 40장 이후에는 이사야는 나오지 않고 아시리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바빌론에 대해서, 유배에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45장 1절에서는 키루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배경은 유배 끝 무렵인 기원전 6세기입니다. 한편 56-66장에서는 이미 유배에서 돌아온 후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더 늦은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 외에 문체와 신학에서도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 세 부분을 완전히 갈라놓고 서로 다른 세 시대에 할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39장 안에도 후대에 첨가된 부분들이나 작은 손질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24-27장은 매우 늦은 시기에 첨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략 말하자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를 염두에 두는 것은 이사야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사 1-39장만을 다루고,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는 각각 유배기와 유배 후의 예언자로 따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세 부분을 마치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책들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앞부분에도 후대에 삽입된 부분이 있다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야서 제2부나 제3부는 각각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첫째 부분에 40-55장이 덧붙여져서 말하자면 개정 증보판이 된 것이고, 다시 56-66장이 덧붙여져 또 하나의 개정 증보판이 된 것입니다. 개정 증보판은 책 두 권이 아니라 한 권이지요. 이사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계속 자라났어도 이사야서는 늘 한 권이었습니다. 뒷부분을 덧붙인 사람들은 기존의 이사야서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면서 책을 새롭게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비록 각 부분의 저자는 달라도 이사야서는 지금도 한 권의 책입니다.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에 대해 몇 가지만 언급해 둡니다. 이사야서 1장 1절에서는 이사야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환시를 보았다고 되어 있으나, 6장 1절에서는 그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연대가 좀 어지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라면 기원전 740년경입니다. 36-37장에서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을 전해주고 그 이후로는 그에 대한 진술이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는 대략 그 무렵까지, 약 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생지나 가문에 대해서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의 글에는 높은 교육 수준이 드러납니다. 임금이나 고위 관리들과 어렵지 않게 접촉하며 정치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나, 신학적으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크게 중시했던 것으로 보나 그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랜 기간 활동한 예언자이기에, 각 시기의 활동에 대해선 다음번에 살펴보겠습니다. 너무 큰 책이라고 미리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14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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