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성인 이야기 (1) 가톨릭의 성인은 2천5백 명가량 된다. 공적으로 시성된 분들이다. 성인품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본인이 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았더라도 교회의 공인을 받기는 어렵다. 성녀 잔 다르크는 1431년 화형으로 숨지셨다. 시성(諡聖)은 1920년 베네딕토 15세 때 있었다. 성인품에 오르는 데 489년 걸렸다. 가장 긴 기록이다. 그만큼 신중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교회 초기는 시성이 쉬웠다. 성스럽게 살았다고 공인되면 교회는 인정했다. 민중의 소리를 하느님 소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많은 성인이 탄생되었다. 중세가 되자 신중해진다. 추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공적 절차를 마련했고 그 과정을 거친 첫 시성식이 993년에 있었다. 요한 15세 교황이 독일 성인 울리히(Ulich)를 시성할 때다. 시성성(諡聖省)은 1634년 설립된다. 성인품을 전담하는 교황청 기구다. 이후 절차는 까다로워진다. 필수 조건으로 기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적은 하느님의 개입이다. 그분의 개입이 확실해야 성인으로 공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순교성인에겐 기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순교 자체를 기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후 성인 숫자는 늘지 않았다. 250명 정도에서 그쳤다. 시성에 따른 절차가 복잡해진 탓이다. 조사 기간이 1세기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엄청난 경비가 요구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서둘지 않았다. 진행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시성 되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경자(可敬者)와 복자다. 가경자는 공경이 가능한 사람이란 뜻이다. 복자 후보에게 잠정적으로 주는 칭호다. 물론 시성성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가경자 단계에서 기적이 일어나면 복자가 된다. 복자에서 또다시 기적이 일어나야 성인품에 오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핵심 키워드는 기적이다. 어떤 분이 성인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면 교구장에게 청원서를 제출한다. 주교는 추대된 분의 삶과 사망과정, 생전 혹은 사후에 이루어진 기적을 조사한다. 시복의 첫 단계다. 자료가 교황청에 전달되면 검정에 들어간다. 결함을 찾아내 혹평하는 역할과 변호하는 역할로 나눠 작업한다. 흔히 전자를 악마의 변호인이라 부른다. 검정을 통과해 교황이 후보자를 받아들이면 가경자 명단에 들어간다. 가경자가 되면 시성성은 복수 재판관을 임명해 자료를 전면 재조사한다. 공적으로 성인 후보자가 되었다는 표시다. 이후 까다로운 기적 문제와 만난다. 가경자가 복자위에 오르려면 세 번의 기적이 있어야 한다. [2015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성인 이야기 (2) 전편에 이야기했듯 기적은 하느님의 개입이다. 그분의 개입이 있어야 복자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교황청 입장이다. 시성성(諡聖省)이 보는 기적은 자연 질서를 벗어나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사건을 뜻한다. 가경자가 복자위에 오르려면 세 번의 기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적을 목격한 증인이 있으면 두 번의 기적만 있어도 된다. 그리고 교황은 한 번의 기적을 면제해줄 수 있다. 한국의 순교성인은 순교 자체를 기적으로 인정받은 케이스다. 목격 증인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가능했다. 시성을 주관한 교황은 한 번의 기적을 면제했다. 16세기엔 기적이라 여겨지던 것이 21세기엔 기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의 발달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기적의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시성성이 인정하는 기적은 루게릭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중병이 의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치유된 경우다. 정말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을까? 여부는 아홉 명으로 구성된 의사단이 조사한다. 성인 후보자에게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주님께 기적을 청해달라는 기도다. 이런 청원을 중보(仲保)기도라 한다. 그렇게 해서 병이 나았다. 불치병이 완치된 것이다. 기적이다. 정말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했을까? 성인품을 위한 기적이기에 아홉 명으로 구성된 의사들이 조사한다. 일곱은 그 분야의 전문가다. 조사 후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 치유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했음을 아홉 명 전원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기적의 첫 단계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까다롭다. 바티칸 성직자 한 분은 이렇게 토로했다. ‘지금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성경의 기적 몇몇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1949년 아홉 명 의사 모두 현대 의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치유라고 인정한 기적이 있다.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심각한 상태였던 사람이 완치된 것이다. 가족은 미국 필라델피아 주교였던 존 뉴먼(1811~1860)에게 중보기도를 오랫동안 바쳤다고 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3년 존 뉴먼(John Neumann)을 복자로 선언한다. 10월 13일 로마에서 시복식이 있었다. 미국의 세 번째 성인이며 첫 남자 성인이다. 뉴먼 주교가 시성 되려면 또 다른 기적이 있어야 했다. 1963년 골수암을 앓던 여섯 살 아이가 완치되었다. 의사들은 의술론 설명할 수 없는 치유라고 만장일치 동의했다. 기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4년 뒤(197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뉴먼 주교를 시성했다. 그동안 신학자들은 복자 뉴먼의 중보로 일어난 기적인지 까다롭게 조사했었다. [2015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성인 이야기 (3) 교회 초기에는 공적인 시성식이 없었다. 하지만 순교자에 대한 경배는 널리 퍼져 있었다. 순교자는 그 시대의 성인들이었다. 순교자의 유해를 매장지에서 교회로 이장하는 것은 시성식에 해당되는 행사였다. 모든 것은 순교자를 모신 교구의 주교가 주관하였다. 세월이 흐르자 교황청은 시성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지역 주교의 권한을 벗어나 교황청이 첫 번째로 시성을 주관한 분은 독일성인 울리히(Ulich)주교다. 993년의 일이다. 17세기 교황 울바노 8세는 시복이나 시성을 하지 않은 분의 공적 경배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100년 이상 공공연하게 경배해온 분은 예외로 했다. 1969년 교황청은 40명이 넘는 성인들을 전례력에서 제외시켰다. 실존 인물인지 오랫동안 의문이 제기되었던 분들이다. 기록이나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공경되어 왔던 분들이다. 공적 성인이냐의 여부완 관계없이 신자들에겐 여전히 성인으로 남아있던 분들이었다.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관습이 깊었던 남미 교우들에게는 커다란 문제점을 남기기도 했다. 역대 교황 가운데 시성식을 가장 많이 거행한 분은 요한 바오로 2세다. 시성식 51번과 시복식 147번을 거행했다. 성인 482분과 복자 1342분이 탄생되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순교성인 103위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도 선종 6년만인 2011년 복자가 되었다. 역사상 가장 빨리 시복된 경우다. 선종 5년 이내엔 시복을 요청할 수 없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당시 염원에 따라 5년 유예기간 없이 바로 시복절차에 들어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최근의 시성식은 2015년 5월 17일 있었다.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으로 팔레스티나 출신 가타스 수녀(1843-1927년)와 바와르디(1846-1878년) 수녀를 성인품에 올린 것이다. 초대교회 이후 팔레스티나에서 성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루살렘 출신의 가타스(Ghattas) 수녀는 고아원과 여자학교를 세워 사회복지에 힘썼으며 로사리오의 도미니칸 수도회를 창설했다. 갈릴래아에서 태어난 바와르디(Bawardy) 수녀는 베들레헴 카르멜 수도원에서 일생을 보냈으며 영적 예언의 은사를 지닌 분으로 알려졌다. 시성식에는 2000여 명의 팔레스티나 신자들이 참석했으며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참석해 화제가 되었다. [2015년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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