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기도] ‘성모송’과 관련된 구절들
루카 복음서의 ‘기도’ 해설 1
지금까지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주님의 기도’를 중심으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기도’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3회 동안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기도’를 살펴보겠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저자가 동일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본 뒤, ‘성모송’과 관련된 첫째 본문인 루카 1,28을 해설하겠다.
‘기도’의 중요성
‘기도’는 루카 복음사가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네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잃어버린(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 ② ‘기도’, ③ ‘성령의 역할’, ④ ‘구원의 보편주의’. 이 네 가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루카 복음서에서 ‘기도’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와 관련된 본문들 안에는 ‘잃어버린(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또한 구세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서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향해 있다는 점도 반영되어 있다(‘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표현 자체에 관해서는 루카 15장을 참조). ‘잃어버린 사람들’의 부류에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병자들 포함)’, ‘죄인들’, 예수님과 사도들 시대의 ‘무력한 처지에 있던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루카 복음서에는 기도에 관한 말씀과 이야기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난 기도의 중요성은 다음 사항들에서 잘 드러난다.
① 루카 복음서의 시작과 끝 장면은 신앙 공동체가 기도하는 모습이다. 시작 장면에는 그리스도 이전 시대 하느님의 백성이 즈카르야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동안 성전 밖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끝 장면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새롭게 형성된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이 나온다.
②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권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몸소 기도하셨다는 점을 다른 복음서들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음 대목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세례 때에’, ‘열두 제자의 선정을 앞두고’, ‘베드로의 메시야 고백 전에’, ‘거룩한 변모 때에’,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최후 만찬 때에’, ‘겟세마니에서의 기도’, 특히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
③ 루카 복음서에는 루카만이 전해주는 기도에 관한 말씀들이 여럿 있다.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의 비유’(11,5-8),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1-8),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예화’(18,9-14).
사도행전에도 기도에 관한 이러한 강조는 그대로 계속된다. 일치하여서 한마음으로 기도에 열중하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루카가 묘사하려고 하는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사도행전의 기도에 관하여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성모송’과 관련된 구절들
성모송은 ‘주님의 기도’와 함께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동반하는 기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성모송’에 나오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라는 부분은 루카 1,28에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이고,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라는 부분은 루카 1,42에 나오는 엘리사벳의 인사말이다.
그 반면에 성모송의 끝 부분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부분은 교회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기도문이다. 이제 루카 1,28과 1,42의 두 구절을 각 구절의 맥락(‘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의 맥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기뻐하여라” 그리스어 원문에서 ‘기뻐하여라’라는 단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표현보다 앞에 놓여 있으므로 이 부분을 먼저 살펴본다.
“기뻐하여라”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카이레’는 언어학적으로만 보면 우리말의 ‘안녕하십니까?’처럼 단순한 일상 인사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일상 인사말의 의미로 몇 구절(마태 26,49; 27,29 등)에서는 그리스어 ‘카이레’가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특히 다음 두 가지 관찰을 고려해 보면, 루카 1,28에 나오는 천사의 인사말 첫 마디(그리스어 ‘카이레’)를 일상적 인사인 ‘안녕하십니까?’라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문자 그대로 ‘기뻐하소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관찰은 유다인들의 일상적 인사는 ‘샬롬’(그리스어로 ‘에이레네’)이지 ‘기쁨’(그리스어로 ‘카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관찰은 루카 복음서 1-2장에 나오는 유년 이야기에서 ‘기쁨’은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유년 이야기는 구세주의 오심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특히 ‘메시아 시대의 기쁨’을 표현하는 몇몇 구절(요엘 2,21;스바 3,14;즈카 9,9)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구약성경의 말씀들에 나오는 ‘기뻐하라’는 독려는 ‘시온의 딸’이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공동체’에 대해 주어지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그들을 구원해 내시는 일을 곧 하실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스바 3,14와 즈카 9,9에 나오는 ‘시온의 딸’이라는 표현은 ‘극심한 곤경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개입을 간절히 기다리던 하느님의 백성’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측면을 유년 이야기 전체에 묘사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다음호에서 자세히 살펴볼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 magnificat)’를 보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위대한 일의 ‘수혜 대상자들’로서 ‘마리아 자신’만 언급되지 않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 ‘비천한 이들’, ‘하느님의 종 이스라엘’ 등도 함께 언급된다. 이 노래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을 대표하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다시 천사의 메시지에 대한 묵상으로 돌아가자. 마리아는 처음부터 ‘기뻐하라’는 독려를 받는다. 앞으로 예고될 일에 온 삶을 다해 그리고 ‘기쁨으로’ 참여할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여기서 우리가 즉시 유념해야 할 점은 천사가 “마리아!”라고 직접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부르는 점이다.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라는 말이 마치 마리아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부분은 단 하나의 단어로 되어 있다. 곧, ‘은총을 베풀다.’ 또는 ‘은혜롭게 만들다.’를 뜻하는 동사의 현재완료 수동태 분사형이다. 이 단어는 마리아가 이미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와 비슷한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무려 104번이나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13번 나온다. 이 어구는, 성경 전체 메시지의 요체는 결국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기쁜 소식(복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와 함께”라는 말은 여기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축원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선언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무나 이런 선언을 받지 않고, 하느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는 사람들(예컨대 야곱, 요셉, 모세, 기드온, 다윗, 예레미야 등)이 받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예수 탄생 예고’의 이야기는 동시에 ‘마리아의 소명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구세사 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하느님께서 구세주로 파견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1,35)의 어머니가 되라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부여된 이 엄청난 사명에 비하여, 마리아의 처지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여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초라하기만 하다. 그는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한 작은 고을의 어느 목수와 정혼한 상태에 있던 한 처녀에 불과했다.
하느님께 받는 소명에 비해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이 부족하기 이를 데 없고 무능하다는 고백은 성경에 나오는 소명 이야기의 공통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하느님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참으로 믿고 의지할 것은 자신들 가문의 영향력도, 그들이 갖고 있던 어떤 능력도, 그들이 쌓아놓은 업적도 아니었으며, 오직 그들을 불러주신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최근 「로마서」(성서와 함께, 2014년)를 저술했다.
[경향잡지, 2015년 8월호, 김영남 다미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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