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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 묵시 2,1-3,2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7 조회수5,598 추천수1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묵시 2,1-3,22





요한 묵시록은 비록 요한 묵시록 전체의 문학유형을 규정할 만큼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서간문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발신인과 수신인, 그리고 은총과 평화를 비는 인사의 형식이 나오는 도입부와 그리스도의 은총을 비는 축복형식의 결말부에이 특징적 형태가 나온다.

그 외에도 묵시록 2장부터 3장까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은 매우 일정한 문학적 구조에 따라 저술되었다. 비록 작은 차이점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편지가 지닌 요소들의 배열에 관련된 부수적인 것이다. 모든 편지는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1) 편지의 발신 명령과 수신인(…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2) 그리스도의 자기소개(…이가 이렇게 말한다).

3) 해당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내리시는 평가는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하실 때에도 그 의도는 해당 교회를 교정하시고자 긍정적인 전망에서 내리시는 평가이다.

4) 해당 교회가 놓인 상황에 대한 특별한 권고 : 이 부분은 다른 부분들처럼 특징적인 도입 형식을 지니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가 놓인 상황에 대해 평가를 하시자마자 자연스럽게 그리고 거의 동시에 권고를 주시기 때문이다.

이 권고는 명령문의 형식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평가 다음에 나오는 분명한 명령이 곧 권고의 내용이 된다.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이 권고의 내용은 바뀌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회개(2,5.16.21.22; 3,3.19)와 기억(2,5; 3,3)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승리자에게 하시는 약속(승리하는 사람에게 나는 …을 [해]줄 것이다.) : 어떤 투쟁의 맥락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그 투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현실화되는 선물을 약속받는데, 그 선물은 종말론적 단계(천상 예루살렘)에서 완전해질 것이다.

6)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는 일반적 훈계(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구조에 따른 분류


앞의 구조에 따라 편지들을 분류하면 위 표와 같다.


수신인 : “교회의 천사”

일곱 편지들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도시의 교회들에 보낸 것이다. 이 도시들은 로마제국의 총독이 주재하던 지역으로서, 아시아에서 다른 지역보다 중요한 도시였고, 당시의 교통망에 따라 나열되었다.

하지만 편지들의 직접적인 수신인은 “교회의 천사”이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교회 공동체 전체에 보낸 것인지, 아니면 교회의 특정인에게 보낸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의 천사”라는 표현은 오직 요한 묵시록에만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이 존재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개별적 존재와 공동체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개별적 존재로 볼 때는 우리가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천사, 곧 수호천사나 보호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천상적 존재를 지칭하거나 주교와 같은 지상적 존재를 지칭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묵시록 시대에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복잡하지만 잘 정리된 교계제도를 지니고 있었다. 곧, 정점에는 주교가 있고 그다음에는 장로들과 부제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교계제도적인 구조를, 묵시록과 동시대거나 조금 후대에 저술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편지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교를 “천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인격 그리고 하느님과 특별하고 직접적인 관계로 묶어주는 그의 기능적 차원은 그런 호칭이 정당화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천사”는 초월적 존재

신약의 다른 책들보다 묵시록에서 “천사”라는 용어가 많이 나온다. 신약 전체의 175번 가운데 67번이 묵시록에서 발견된다. 8번 나오는 “교회의 천사”라는 표현을 제외하고, 이 용어는 비록 언제나 인간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늘 어떤 초월적 존재를 지칭한다.

“천사”가 악마적 존재를 이르는 경우에는 부정적 초월성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메뚜기들”은 “지하의 사자”(직역하면 지하 또는 심연의 천사)를 자기네 임금으로 모신다(9,11).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천사들에게 부여된 초월성은 긍정적 표지로서, 천사들은 여러 차원에서 그리고 여러 역할을 통해 구세사의 역동성에 참여한다.

“교회의 천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물을 주관하는 천사”(16,5)라는 표현이다. 이때의 천사는 인간 현실과 하느님의 관계를 표현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문맥에서 좀 더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교회의 천사”는 편지들의 수신인으로 나오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발현” 문맥에 이미 등장하고 “별”과 동일시된다(1,20 :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다”). “별”은 우주적 상징으로서 초월성의 차원을 의미한다. 별과 동등한 교회의 천사는 하늘, 곧 초월성의 영역에 자리한 존재이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천사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별을 단순히 지니고 계신 것이 아니라,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당신의 “오른손에 쥐고 계셨기”(1,16; 2,1)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천사로 표현된 초월성은 일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영향으로 새로워진 초월성이다.

좀 더 구체적인 단서는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나온다. 일곱 편지의 수신인은 단수인 교회의 천사이지만 실제 내용에 들어가면 2인칭 단수인 “너”와 2인칭 복수 “너희”가 어떤 의미 변화도 없이 혼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2,25에는 “다만 ‘너희’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라.”로 나오지만, 3,11에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라.”로 나온다.

동일한 담화문에서도 ‘너’에서 ‘너희’로 넘어갔다가 다시 ‘너’로 바뀌지만 그 대상은 항상 동일함을 알 수 있다(2,10: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교회의 천사”는 교회의 초월적 차원

종합해 보면 “교회의 천사”라는 표현은 교회 공동체의 초월적 차원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 초월적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오른손에 쥐고 계시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힘있게 쥐고 계시는 것은 일반적인 천사들이 아니라 천사들이 암시하는 “교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초월성을 당신 손안에 강하게 쥐고 계시고, 교회들에 나누어주신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는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특별히 전례적 환경 안에서 초월성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일곱 편지들의 수신인은 이런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차원과 초월적 차원을 동시에 지니는 일곱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이 일곱 교회는 ‘일곱’이라는 숫자의 상징을 통해 각각의 개별 교회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를 넘어 통일성과 전체성 안에서 보는 교회 전체를 뜻한다.

수신인에 대한 이러한 숙고는 현대의 독자가 이 편지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독자들은 각 교회의 상황에 스스로를 비추어보면서 그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와 권고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묵시록 당시의 그 교회들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께 밀접히 결합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교회 전체에 주어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 이성근 사바 신부. 1991년 사제로 수품, 교황청립 성서대학을 졸업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8월호, 이성근 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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