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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38: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06 조회수4,459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8)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폐허에서 희망을 말씀하신 우리의 하느님



헨리 설리(Henry Sulley) 작, 에제키엘이 예언한 미래의 성전.


멸망했습니다. 바빌론군이 쳐들어와 성전을 불살랐습니다. 다윗 왕조도 무너졌습니다. 그럼 이제 어떤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멸망을 믿지 않을 때에 멸망을 말했던 에제키엘은, 다른 이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이 시점에서는 다시 불가능할 것 같은 희망을 선포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예루살렘이 함락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가?”를 말합니다.

새로운 시작에 관련된 여러 주제가 36장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주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어도, 이스라엘이 주님을 성전에서 떠나가시게 했어도, 지금과 같은 상태는 끝없이 계속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흩어진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너희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지요. 하느님께는 멸망한 당신 백성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운명을 되돌려 줄 마음이 없으신 걸까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멸망의 원인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다는 것과 정반대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선고되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공부한 대로 성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을 보아서는 성적을 줄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계약에 충실하고 율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느님도 이만큼 해 주셔야 한다고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너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들을 구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편에서 어떤 조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당신 이름 때문에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계약에 충실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계약이 파기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면, 이제 계약의 회복은 하느님의 선물로 이루어집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스라엘이 흩어져 살면서 주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것은 다른 민족들이 멸망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그것이 주님이 무능력하고 당신 백성을 지킬 수가 없으셨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 이름을 위해서 죄를 짓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그들의 땅으로 모으십니다. 그런 다음 그들을 모든 부정과 우상에서 정결하게 해주시고 그들이 새 마음, 새 영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들의 돌로 된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36,23).

이것은 에제키엘만이 아니라 유배 중-유배 후 예언자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가 한번 깨진 다음, 그 관계의 회복은 온전히 하느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시 역시, 인간이 보기에는 아무 희망이 없으나 하느님은 그 속에서도 구원을 이룰 수 있으심을 보여 줍니다. 흩어진 마른 뼈들은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37,11)고 말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그 뼈들이 살아날 것인지는 주님께서 아십니다.

요한 묵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젠가 완성될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 주듯이, 에제키엘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장차 회복될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난 다음에 바빌론이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주도로 시작될 예루살렘의 회복은, 그 과정이 역전되어 새 성전이 세워지고(40─42장) 주님의 영광이 그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43장) 이루어집니다.

잠시 에제키엘이 이러한 예언을 했던 연대를 기억해 봅시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이 기원전 587년이고, 에제키엘은 기원전 571년까지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아직 유배 초기,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때입니다. 그 시기에 누가 성전이 회복될 날을 내다보았겠습니까? 다른 이들은 아직 슬픔에 잠겨 있고, 무너진 예루살렘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이미 그 성전의 회복을 말합니다. 성전 오른편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그 물 곁에는 나무들이 다달이 열매를 맺습니다(47장). 물에는 물고기가 그득하고 그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납니다. 주님께서 다시 성전에 와 계시기에, 그 성전으로부터 예루살렘과 온 세상에 생명이 흐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감탄할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말씀을 믿기 위해서 얼마나 큰 믿음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언자가 멸망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이가 적었던 것처럼, 그가 구원을 선포할 때에도 그 말씀에 희망을 두는 이는 적었을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6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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