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얌니아 초대교회가 커지자 유다인은 위협을 느낀다. 유다교 분파로 생각했는데 아닌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방인 숫자가 느는 것도 위협이었다. 당시 초대교회는 일종의 공동생활이었다. 재산을 바친 교우들이 많았다. 이들은 일종의 생계비를 받고 있었는데 유다 출신 교우와 그리스 출신 교우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그리스 교우들이 차별받는다며 항의한 것이다(사도 6,1). 문제 해결을 위해 일곱 봉사자가 선정됐고 명단 첫 자리에 스테파노가 있었다(사도 6,4). 최연장자였을 것이다. 유다인은 스테파노 부제를 공격하면서 그리스도인 박해를 시작한다. 중심엔 랍비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ai)다. 그는 66년 시작된 독립전쟁의 실패를 예견하고 준비를 서두른다. 먼저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난 것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유다교 존속의 허락을 받아냈다.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요하난과 추종자들은 얌니아에 모인다. 오늘날의 야브네로 지중해 연안도시다. 율법학교를 개설해 랍비를 키워냈고 훗날의 유다교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90년엔 유다교 경전목록을 확정한다. 달리 말하면 구약성경의 정경(正經)을 결정짓는 작업이다. 이것이 얌니아 회의다. 이 작업에서 초대교회가 사용하던 70인역 성경의 일곱 문서가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다. 이유는 히브리어로 쓰인 문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희랍어 성경 70인역은 히브리어 경전을 번역한 것인데 히브리어로 쓰인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렇게 해서 타나크(Tanak)라 불리는 유다교 경전 24권이 결정되었다. 이후 유다교는 70인역을 부정했고 70인역 성경을 사용하는 초대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했다. 희미하게 공존하던 유다교와 기독교는 완전 결별을 맞게 된 것이다. 380년 기독교는 로마 국교가 되고 2년 뒤에는(382년) 70인역을 정경으로 선언한다. 문제가 되었던 7권도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유다교 경전 24권에서 한 권으로 되어있던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기를 2권으로 나눴다. 역시 한 권이던 소예언서도 12권으로 나눠 46권이 되게 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구약성경을 39권만 인정했다. 일곱 권을 위경(僞經)으로 판단한 것이다. 가톨릭은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 구약성경 46권을 재차 확인했다. [2015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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