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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함께 아파하기의 성경 읽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4 조회수3,885 추천수1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함께 아파하기’의 성경 읽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독자에게 성경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하느님 자비의 화신(化身)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자비, 연민(憐憫),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에토스(ethos)를 발견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의 공감(共感)에로, “함께 아파하기”의 삶에로 초대한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외침

 

오늘의 독자는 성경에서 두 종류의 외침을 만난다. 첫 번째 외침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이다. 이것은 생명과 자유를 위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외침이다. 가난한 이들의 외침은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초래되는 사회적 불의와 정치,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에 그 고통의 원인이 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 3,7). 두 번째 외침은 창조 세계의 탄식, 생태계의 외침이다. 지구의 외침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서 초래되는 생태적 불의와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개발과 약탈에 그 고통의 원인이 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이 외침들에 귀 기울이는 성경의 독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착취와 창조 세계에 대한 약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사회적 불의와 생태적 불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창조 세계에서 가장 위협받는 존재가 바로 가난한 이들이다.

 

성경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에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 선택은 가난하게 만드는 억압과 착취에 대한 저항이고 해방을 위한 실천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다른 창조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해방이다. 해방 실천은 고통당하는 가난한 이들의 전망에서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를 고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조직되고 의식적인 가난한 이들이 능동적인 주체로서 해방에 투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해방 실천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실천은 생태 정의(ecological justice)의 실현으로 나아간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착취와 지배가 아니라 형제, 자매의 올바른 관계로 형성된다. 이 관계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성경의 독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서 출발한 해방 실천이 가지는 더 풍요로운 차원을 만나게 된다.

 

 

‘함께 아파하기’의 패러다임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새로운 삶의 방식인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의 에토스에로 초대한다. 예수님의 이 에토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바로 “가엾은 마음이 들다”라는 동사이다. 예수님은 군중(마르 6,34; 8,2), 병자(마르 1,41), 눈먼 이(마태 20,34), 외아들을 잃은 나인 과부(루카 7,13)에 대하여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리스어에서 이 동사는 “사람의 창자, 내장”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데, 인간의 내면 깊숙이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 속마음이 절절한 불쌍함으로 움직여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공감(共感)을 가리킨다. 이 공감을 달리 표현하면 “함께 아파하기”(라틴어 cum+passio)이다. 예수님의 “함께 느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즉 다른 사람과 “함께 아파하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셨던 에토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함께 아파하기”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뒤따르는 것, 즉 그분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을 우리가 다시 살아가는 “예수살이”로서, 그분의 비전(vision), 그분의 정신, 그분의 가치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고 비판하실 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하나의 대안(代案, alternative)으로 제시하고 실천하셨다. 예수님은 그 대안적 질서와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분리와 배제의 에토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계들로 갈라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님의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는 자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함께 아파하기” 에토스는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비전(social vision)을 제시한다. 분리와 배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social paradigm)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자비의 에토스는 고통 받는 이와 “함께 느낌”, 즉 “함께 아파하기”이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를 갈라놓았던 일체의 차별과 경계와 허무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독자인 우리를 억압받는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지구와 “함께 아파하기”에로 초대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이다. 하느님 나라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저항이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비전은 이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먼저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고, 나아가 그들의 영향을 통해 더 넓은 사회 안에서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지구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도전이고, ‘함께 아파하기’의 정치, 경제, 사회, 생태라는 대안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세상의 변혁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방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 1년 동안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을 집필해 주신 송창현 신부님 감사합니다.

 

* 송창현(미카엘) 신부는 1991년에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침, 2015년 1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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