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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성경 속 도시71: 타드모르(팔미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4 조회수3,551 추천수1

[성경 속 도시] (71) 타드모르(팔미라)


솔로몬이 사막 한가운데 세운 요충지



지금부터 한 15년 전일 것이다. 레바논을 거쳐 시리아에서 성지 순례를 한 적이 있었다. 시리아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인상적인 곳이다. 의외로 거대한 유적들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그 규모가 웅장해서 깜짝 놀랐다.

버스를 이용해서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다 보면 녹색의 대추야자나무 숲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바로 사막의 꽃으로 불리는 팔미라, 성경의 타드모르다. 이곳이 고대나 오늘이나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 좋은 휴식처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 도시의 역사는 무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인에 의해 ‘팔미라’로 불린 타드모르는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 도시는 주변 강대국의 역사와 함께하다가 서기 1~3세기 로마 시대에 가장 융성했다. 현재의 유적도 모두 이때 것들로 추정된다.

타드모르는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에 솔로몬이 세운 도시이다. “그리고 광야에 있는 타드모르와 하맛에 세운 양곡 저장 성읍들을 모두 재건하였다”(2역대 8,4). 고대 타드모르는 군사기지였으며 무역 중심지였고 숲이 우거진 오아시스였다. 다마스쿠스에서 하란으로 갈 경우 타드모르를 경유해야 했는데, 이 길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른다. 사막 가운데 있는 비옥한 오아시스에 세운 이 도시는 당연히 상인들의 휴식처이며, 상업 도시로 발전했다.

특히 로마 점령 시기에 가장 번창하여 요르단의 페트라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중개 무역지가 되었다. 그러나 세력이 강해지자 로마로부터 팔미라 왕국은 완전 독립을 선언하고 터키의 앙카라까지 정복해 그 세력을 넓혔다. 위기를 느낀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타드모르를 공격해 팔미라 왕국은 멸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아 있는 잔해만으로도 타드모르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유적지를 통해 고대 도시계획이 매우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서로 뻗은 중심거리에는 거대한 진입로 시설과 분수 조각 화단 등이 설치된 3개의 공원이 있으며 남쪽에는 광장, 원로원, 극장 등이 배치돼 있다. 바알 신전의 위용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역사 유적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방에서 만난 시리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척 순박하고 착했다. 외국 사람을 본적이 드물어서인지 우리가 이동하는 대로 아이들이 떼 지어서 같이 움직였다. 어림잡아 수백 명은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허름한 옷에 신발도 변변치 못했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도 많았지만 호기심 어린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큰 눈으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눈이 마주치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쑥스러움도 많아 내가 작은 선물을 주려고 불러도 부끄러워하며 아이들은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들을 친절하고 아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마음은 지금까지 지내온 여행 중에 한 번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그 어린이들이 이제는 청년이 되었을 텐데, 시리아 내전에 고통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더불어 중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고대 유적 중 하나인 시리아의 오아시스 도시 타드모르가 최근 IS의 공격으로 많은 것이 파괴됐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고대 유적 파괴와 약탈을 한 IS가 타드모르 유적까지 파괴했다. 전쟁과 천재지변을 겪으면서도 수천 년을 버텨온 역사의 유적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1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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