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시리아인 아시리아(Assyria)란 말은 그들의 수호신 아슈르(Assur)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이들은 수호신의 신전이 있던 도시도 아슈르라 했는데 티그리스 강변 산악지대에 있었다. 훗날 제국이 된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 상류를 아슈르의 땅이라 부르며 신성시했다. 하지만 수도는 니네베였다. 우리에게는 요나 예언자와 연관되어 알려진 도시다.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지역이 니네베가 있던 곳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모술은 옛날의 니네베인 셈이다. 모술은 이라크의 두 번째 도시로 티그리스 강변 동쪽 평원에 있다. 예부터 곡물과 대리석이 풍부해 상인들의 거점도시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무솔리니라는 성(姓)은 모술 상인의 후예에서 유래되었다. 모슬린이라는 면직물 역시 모술에서 만들어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십자군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이렇듯 모술은 근대까지 화려한 니네베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석유생산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아시리아가 중동의 최강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전차부대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동력을 바탕으로 시리아와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복속시켰고 한때는 이집트 국경까지 세력을 확장했었다. 이렇게 해서 히타이트(터키)의 철과 레바논의 삼나무를 독식하는 대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잔인한 민족이었다. 구약성경도 이들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차갑다. 아시리아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태동한 국가였다. 따라서 투쟁이 곧 생존이었다. 이들은 식민지의 반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복했고 때로는 주민들을 송두리째 몰아냈다.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주민들이 그런 케이스였다. 아시리아는 이들을 티그리스 강 북쪽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켰던 것이다. 기원전 722년의 일이다. 당시 임금은 사르곤 2세였다. 이후 아시리아는 전성기를 누리지만 1세기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원전 609년 멸망한다. 메소포타미아 부족을 규합한 바빌로니아 연합군에게 패한 것이다. 이후 중동은 바빌로니아가 세력을 잡는다. 중심인물은 두 번째 황제로 등극한 네부카드네자르였다. 훗날 아시리아의 뿌리였던 아람인은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섰고 시리아라 불렀다. 아시리아 뒤를 잇는다는 의미였다. 아시리아 공용어는 아람어였다. [2016년 2월 7일 연중 제5주일 · 2월 14일 사순 제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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