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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16 조회수7,375 추천수2

[이스라엘 이야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손


“힘의 원천은 주님” 모든 것 잃고 깨달아

 

 

- 초르아에 남아 있는 삼손의 기념묘.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 중 가수 조영남씨의 ‘딜라일라’라는 팝송이 기억난다. 딜라일라는 삼손의 연인 ‘들릴라’의 영어 이름이다. 성인이 되어 이 노래를 다시 접한 뒤, ‘그댄 내 여인, 날 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 ‘왜 날 버리는가’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 찡하게 삼손을 생각하곤 했다. 평생 방탕한 호걸로 살다가, 독이 된 사랑 탓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여인이라는 덫에 걸려 몰락했지만, 마지막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쓰러진 영웅.

 

삼손은 단 지파 사람으로서, 이름 뜻은 ‘태양’이다. 태양 같은 힘을 지녔으니, 이름값을 한 셈이다. 그에 반해 들릴라는 ‘밤’을 뜻하므로, 처음부터 둘은 상극이 될 운명이었나 보다. 삼손이 이스라엘 판관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이스라엘이 악한 일을 저질러 주께서 그들을 필리스티아 손에 넘기셨기 때문이다(판관 13,1).

 

필리스티아는 기원전 12세기경, 에게 해 방향에서 들어온 이방인이었다. 지중해 남쪽인 ‘가자’, ‘아스클론’, ‘아스돗’, ‘에크론’, ‘갓’(여호 13,3 등) 등에 살며, 이스라엘 중부 지방까지 넘보았다. 상황이 이러니 지중해 연안을 분배 받은 단 지파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았다(여호 19,40-48 참조). 호걸이 될 팔자였기 때문일까? 삼손은 탄생부터 특이했다. 오랫동안 불임이던 어머니가 천사에게서 수태고지를 받고 아들을 낳은 뒤, 평생 나지르인으로 바쳤던 것이다(판관 13,7). 아버지 마노아는 유다와 단 지파 사이 경계인 초르아 사람이었다. 초르아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2㎞ 떨어진 마을이다. 마노아는 ‘휴식’을 뜻하는 이름이기에,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로부터 잠시나마 휴식을 얻게 될 것임을 암시해준다.

 

세기를 흔든 호걸들의 특징 하나는 여인에게 약하다는 것인데, 삼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에는 이방 출신으로 보이는 여인이 셋 등장한다. 하나는 팀나에 사는 필리스티아 여자였다. 삼손이 팀나 여인을 아내로 원하자 부모는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이 일은 주께서 필리스티아를 치시려고 생긴 것이었다(판관 14,1-4). 이 혼인 사건으로 삼손은 수많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치게 된다(판관 14,19 15장). 하지만 술은커녕 포도도 먹으면 안 되는 나지르인(민수 6,2-4 참조)이 팀나 여인을 만나러 갈 때 거리낌 없이 포도밭을 통과한 일이나(판관 14,5), 당시 풍습대로 술 연회를 연 일(판관 14,10 참조)은 그가 통제 안 되고 성질 거친 호걸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당나귀 턱뼈를 휘둘러 필리스티아인을 마구잡이로 응징한 것도 민족을 위한 일이 아니라, 팀나 여인을 빼앗긴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두 번째 여자는 가자 출신 창녀였다. 삼손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필리스티아인들은 창녀의 집을 둘러싸지만, 삼손은 이 음모를 잘 빠져 나간다(판관 16,1-3). 그리고 세 번째 여자가 바로 삼손의 운명을 결정지은 ‘밤의 여인’ 들릴라였다.

 

- 사진 아래쪽으로 보이는 곳이 들릴라가 살았다는 소렉 골짜기다.

 

 

들릴라는 소렉 골짜기에 살았는데, 필리스티아 제후들과 짜고 삼손을 무너뜨릴 계략을 꾸민다(판관 16,5). 자기에게 반한 삼손을 구워삶은 끝에,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몰래 깎아 버렸다. 물론 힘의 원천은 주님이고 머리카락은 그 표징에 불과했지만, 삼손은 그것도 구분 못할 만큼 경솔한 사람이었다. 힘의 표징인 머리카락이 잘려 버리자, ‘태양’ 같던 삼손이 무기력하게 눈까지 뽑혀 ‘빛을 잃는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방탕하고 경솔한 한 호걸에 대한 스토리로 단순하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자로 끌려간 뒤 필리스티아 신전에 갇히자, 삼손은 마지막으로 가슴에서 우러난 기도를 올렸다(판관 16,28). 이제껏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그제야 제 힘이 본디 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듯이. 그렇게 삼손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신전을 무너뜨린 뒤, 필리스티아와 함께 짧고 굵은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스라엘에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고, 일부 필리스티아인들을 몰락시키는 데 그친다. 게다가 필리스티아를 응징하려 한 동기도 제 눈에 대한 복수에 지나지 않았으니(판관 16,28), 과연 그는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초르아에 가면 삼손의 기념묘가 남아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지만, 판관기 저자는 삼손을 통해 ‘주께서 쓰시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13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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