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예수님 탄생 예고, 구원의 역사 1막 1장 - 프라 안젤리코 작 ‘주님 탄생 예고’, 1433년,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이탈리아 밀라노. 예수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탄생에 대한 예고로부터 시작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언급 없이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시작합니다. 요한 복음서 역시 짧게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탄생에 대한 예고는 찾을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탄생에 대한 직접적인 예고 대신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전합니다(마태 1,1-17). 그렇기에 마태오 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로서, 그리고 왕들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서 소개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하면서 간략하게 지난 과거의 탄생 예고를 언급합니다(마태 1,18-23). 그리고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건을 이미 구약성경의 예언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관련해서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은 루카 복음서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함께 요한 세례자의 출생과 관련된 내용을 함께 전하면서 짜임새 있게 구성해 놓았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 예수님의 탄생 예고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수님의 탄생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극적인 만남 또한 전해줍니다. 마치 탄생 예고에서부터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는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가브리엘 천사의 이 표현은 앞으로 복음서 안에서 보게 될 요한 세례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즈카르야에게 전해진 요한의 출생 예고는 엘리사벳의 잉태로 확인됩니다. 같은 가브리엘 천사는 그 후 여섯째 달에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3월 25일에 기념합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로부터 아홉 달을 거꾸로 계산한 날입니다. 이런 전례의 의미를 본다면, 교회는 이미 가브리엘의 탄생 예고 때에 마리아가 잉태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답을 듣고서야 마리아에게서 떠나갑니다.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서 보게 되는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천사의 발현에 두려워하고 처음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언자들의 소명에 관한 내용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동시에 마리아를 부르시는, 마리아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탄생의 예고와 요한 세례자의 출생 사이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이 소개됩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여전히 지금도 성모송과 마리아의 노래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마리아를 칭송하는 이 만남을 매일 기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믿기 힘든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두 여인은 예수의 드라마를 시작하는,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도록 하는 가장 큰 조력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립니다. 단순히 먼저 탄생을 알려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이 이 세상 안에서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려 주는, 구원 역사를 위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탄생 예고는 미리 앞으로 태어날 아기 예수의 정체성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주님으로 백성들을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구원 역사를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시작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평화신문, 2016년 6월 19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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