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이쉬, 사람
‘이쉬 엘로힘’은 하느님의 사람, 곧 예언자 뜻해 - 이쉬. 영어의 man과 비슷한 말이다. 히브리어로 ‘이-쉬’는 ‘사람’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가 무엇일까? 물론 이쉬다. 이 낱말도 알레프로 시작한다. 이쉬는 ‘남자’나 ‘남편’을 뜻하기도 하니, 영어의 man과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는 무척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에 남성을 의미하는 말이 사람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이쉬와 잇샤 - 잇샤. 이쉬와 잇샤는 철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러면 여성을 의미하는 말은 무엇일까? ‘잇샤-’라고 한다. 남성과 여성, 곧 이쉬와 잇샤는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창세기 2장은 엘로힘께서 이쉬와 잇샤를 만들어 주신 이야기를 전한다. 그 이야기 말미에, 최초의 남성이 최초의 여성을 보고 기쁨에 겨워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라고 외친다. 이 말을 히브리어로 하면 “이쉬에게서 나왔으니 잇샤라 불리리라”가 된다. 이 ‘이쉬 - 잇샤 대목’에는 일종의 말놀이가 있다. 이 말놀이를 떠올릴 때마다, 남성과 여성은 본디 친밀하고 평등한 관계라는 성찰에 자연스레 빠지고는 한다. 잇샤나 이쉬나 모두 하느님의 동등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쉬와 잇샤의 사이를 멀게 만드는 ‘부당한 성차별’은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 이쉬 엘로힘. 알레프로 시작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 두 개를 그저 이어붙인 표현이지만, 그 뜻은 매우 심원하여 신앙인의 성찰을 자극한다. 다양한 파생어 이쉬는 다양한 파생어를 만든다. 주로 신원, 직위, 직업 등을 나타내는 일에 쓰인다. ‘이쉬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사람’(여호 9,6)이란 뜻이고, ‘이쉬 이브리트’는 ‘히브리 사람’(탈출 2,11)이란 뜻이다. 우리말과 달리,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보다 뒤에 온다. ‘이쉬 다비드’는 ‘다윗의 사람들’이란 뜻인데, 우리말로는 ‘다윗의 부하들’(1사무 23,3-복수형)이라고 옮겼다. 하느님의 사람 이런 파생어들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이쉬 엘로힘’일 것이다.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다. 이쉬 엘로힘은 예언자의 가장 오래된 호칭이다.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개가 있다(앞으로 차차 살펴볼 것이다). 그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이쉬 엘로힘, 곧 하느님의 사람이다. 이쉬 엘로힘은 일찍이 모세의 칭호였다(신명 33,1; 여호 14,6 등). 사울이 사무엘을 처음 만날 때, 사무엘은 세 번이나 ‘하느님의 사람’으로 불렸다(1사무 9,6.8.10).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홀로 상대하여 대승을 거둔(1열왕 18장)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예언전승의 매우 초기 인물이다. 사렙타의 과부는 아들이 죽자 엘리야에게 찾아가 “하느님의 사람이시여!”(1열왕 17,18)라고 호소했고, 엘리야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아들을 살려내자 다시 ‘하느님의 사람’께 감사를 드렸다(1열왕 17,24; 참조 2열왕 1,9-13). 엘리야의 직속 후계자 엘리사도 이런 호칭으로 불렸다(2열왕 4,7,16,21 등). 이 밖에도 이쉬 엘로힘은 이름 모를 예언자의 호칭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예언자 이쉬 엘로힘은 생각할수록 참 깊은 이름이다. 필자는 동료 신자들이 이 가장 단순한 이름을 성찰해 보실 것을 적극 권하고 싶다. 히브리어의 첫 글자 알레프로 시작하는 낱말로만 이루어진 이 호칭은 지극히 단순하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일반적인 낱말인 엘로힘(하느님)과 이쉬(사람)를 그저 붙여 이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박한 말일 뿐이다. 하지만 이 호칭만큼 예언자의 본질을 쉽고도 정확히 꿰뚫어주는 표현이 있을까?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돈에 휘둘리는 사람도 아니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인간적인 것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예언자는 오직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 오직 하느님께 영감 받는 사람, 오직 하느님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 하느님만 보고 실천하여, 하느님이 주신 운명의 사람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한마디로 이쉬 엘로힘, 곧 하느님의 사람이다. 이렇게 원어를 조금만 알아도 성찰에 도움을 받고 신앙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알레프로 시작하는, 신앙에 매우 중요한 소박한 단어로는 엄마와 아빠도 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7월 17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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