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4)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오병이어의 기적, 성찬례와 맞닿아 - 틴토레토 작, ‘빵과 물고기의 기적’ 일부, 1570년경, 스탠리,모스 컬렉션, 미국 뉴욕.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련된 내용을 제외하고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네 복음서가 모두 전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요한 복음과 다른 복음서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지만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점에서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요한은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요한 6,1)이라고 말합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단순하게 “외딴곳”(마르 6,32; 마태 14,13)으로 전합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가셨다는 것을 보아 갈릴래아 호수 근처였던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루카 복음만이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벳사이다 고을”(루카 9,10)이라고 전합니다. 현재 ‘타브가’라 불리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하는 성당은 전승에 따라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카파르나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 의하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파스카가 가까운 때”입니다(요한 6,4).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따로 물러나 있을 때, 군중들이 그분을 따라갔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많은 군중을 본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고(마르 6,34) 아픈 이들을 고쳐 줍니다(마태 14,14; 루카 9,11).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군중을 돌려보내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마르코 복음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빵을 사다가 군중들에게 주라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군중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암시합니다. 제자들은 군중들에게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라고 알립니다. 이 장면에서 요한 복음은 조금 다릅니다. 예수님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것은 필립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이 군중들을 먹일 수 있을지 묻고, 필립보는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이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이때 안드레아는 한 아이가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말합니다.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보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주도권을 강조합니다. 이 사건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고 또 예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거의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군중들을 앉게 하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들을 군중들에게 나눠 주었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군중은 남자들만 오천 명가량 되었다는 하나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성찬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는 것은 성찬례의 모습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빵으로 배를 불리셨다는 것 역시 성찬례의 의미와 비슷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자주 ‘나눔’을 강조하는 데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나눔의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아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이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빵으로 내어주신 성찬례에 대한 기억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4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