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7)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신앙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라 산 제자들처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냐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림은 렘브란트 작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1634년, 네덜란드 테일러스 박물관. 가톨릭 굿뉴스 제공. 예루살렘을 향한 한 번의 여정, 이것이 공관 복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입니다. 그리고 공관 복음은 장소에 따라 여정을 구분합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쓰인, 그리고 다른 복음서들의 틀로 사용된 마르코 복음에서 베드로의 고백은 내용상 정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 이후 복음서에서는 처음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공관 복음에서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를 떠나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대한 제자들의 답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낸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또는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이 생각했던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번에는 베드로가 나서서 답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표현은 질문에 대한 답인 동시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이 맞게 될 미래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겠지만 부활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방금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예수님의 꾸짖음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고백했지만 사탄이라는 꾸지람을 들은 베드로. 이런 사건들 뒤에 따라오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제자들의 신앙 고백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치 하나의 묶음처럼 보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의 흐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고백한 이후에도 수난과 죽음,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표현됩니다. 특별히 첫째 수난과 부활의 예고는 베드로의 고백과 함께 제자의 태도, 곧 제자됨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언급됩니다. 사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기록됐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초대 교회에서 진지하게 생각했던, 넓은 의미에서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신앙인들의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인지, 또 어떤 이들이 신앙인인지를 숙고했던 흔적처럼 보입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자세에 대해 “날마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라는 표현은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삶을 따라 사는 이들입니다. 공관 복음은 모두 그것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받으실 영광은 수난과 죽음이라는, 자신을 버리는, 자신을 내어놓는 일들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과 수난과 부활 예고, 그리고 그 삶을 따르라는 복음서의 내용은 우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제자로서 기본적 자세는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말씀하셨던 “나의 뒤로 (오너라)”라는 표현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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