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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헤칼, 성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5 조회수6,770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헤칼, 성전


예루살렘 성전의 중앙 ‘성소’ 의미하기도

 

 

헤칼은 성전이다.

 

 

큰 집

 

헤칼은 고대 수메르어에서 기원한 말이다. 기원전 33세기경 인류 최초로 문명시대를 시작한 수메르인들의 언어로 에(E)는 ‘집’을, 갈(GAL)은 ‘크다’를 뜻했다. 이 말을 합친 에갈(E.GAL)은 ‘큰 집’을 의미했는데, 인간이 사는 큰 집인 ‘궁전’이나 신이 사는 큰 집인 ‘신전’이란 의미였다. 수메르 문명이 저물고 그 뒤를 아카드 문명이 이었다. 아카드어로 신전을 뜻하는 ‘에칼루’(?kallu)는 ‘에갈’을 음차한 것이다. 대략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에칼루를 음차하여 헤칼이라 칭했다.

 

성전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근동의 모든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고대근동 세계의 최첨단 전문용어로서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많은 문명권을 통과하여 ‘에갈 - 에칼루 - 헤칼’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마치 현대 세계에서 ‘카메라’나 ‘컴퓨터’ 같은 첨단 용어가 음역 되어 전파되는 현상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외래어의 족보’를 보면 고대근동의 이웃 종교들이 긴밀히 얽혀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어느 민족이든 훌륭한 신전을 지어 바치려 노력했다는 것은 초월자를 향한 인간의 마음이 보편적 현상임을 웅변한다.

 

 

왕궁

 

- 헤칼로. 끝의 “오”(?)는 “그의(his)”란 뜻으로 “헤칼로”는 “그의 성전”이란 뜻이다. 주님을 의미할 때는 “당신의 성전”으로 높여서 옮긴다.

 

 

구약성경에서 헤칼은 궁전을 의미한다. 본디 외래어이니 이스라엘의 궁전이나 이웃민족의 궁전이나 모두 헤칼이라 칭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나봇의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헤칼(궁) 곁에 있었다”(1열왕 21,1).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은 외모와 지혜와 지식이 출중하여 “헤칼(왕궁)에서 임금을 모실”(다니 1,4) 젊은이들로 뽑혀 바빌론 왕실로 들어갔다.

 

 

성전, 성소

 

헤칼은 구약성경에서 ‘성전’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헤칼은 하느님의 집, 곧 성전이었다(느헤 6,10). 일찍이 엘리 사제는 실로에 있는 “주님의 헤칼(성전)”(1사무 1,9)에서 일했고, 어린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곳도 “주님의 헤칼(성전)”(1사무 3,3)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시를 받은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헤칼(성전)” 앞이었다(예레 24,1). 그런데 헤칼은 특히 예루살렘 성전의 중앙, 곧 성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솔로몬 임금이 지은 성전의 “앞쪽에 있는 헤칼(성소)은 마흔 암마였다”(1열왕 6,17). 성전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지극하였다.

 

 

가난한 백성의 성전

 

- 헤칼레카. “카”(k?)는 “너의(your 남성)”란 뜻으로 “헤칼레카”는 “너의 성전”이란 말이다. 주님을 의미할 때는 “당신의 성전”이라 옮긴다. k에 해당하는 카프(푸른색)는 단어 끝에서 모양이 달라진다(미형).

 

 

헤칼이 외래어란 점을 성찰하면 구약시대 이스라엘 종교를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디 히브리인들은 고대근동의 제국들처럼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녀본 적이 없다. 그들의 조상들은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고(신명 26,5) 그들은 늘 작고 초라한 백성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어엿한 나라를 세웠다. 다른 나라처럼 예루살렘이라는 수도를 건설하고 훌륭한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왕궁과 성전을 가져본 적이 없던 이 백성은 선진국들의 사례를 깊이 참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 눈으로 보면 고대 이스라엘의 왕궁이나 성전은 다른 고대근동의 왕궁이나 성전과 비슷해 보인다. 오히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성전은 바빌론이나 페르시아나 이집트 등 대제국들의 성전에 비교하면 초라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하느님 백성에게는 성전의 겉모습이 아니라 성전의 의미가 중요했다. 헤칼은 하느님의 궁전이었다(시편 29,9; 48,10).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예수님과 성전에 관한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마태 12,1) 되었을 때, 그분은 구약시대 율법의 참뜻을 과감한 실천과 놀라운 말씀으로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12,7) 가르치시면서 스스로 이렇게 선언하셨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12,6). 이 세상 어느 대제국의 성전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 오신 기쁜 날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2월 25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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